에세이
2025년 5월 25일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킬라우에야 화산이 역대 가장 큰 폭발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작년 10월에 빅아일랜드의 이 화산을 보고 온 나는 "용암 높이 300m"이자 23번째 화산 분화로 역대 가장 큰 규모라고 하는 이 기사를 읽고 연기만 흘러나오던 그 평온한 화산이 용암을 분출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번 분출이 큰 화재가 된 것은 바로 용암 분출 높이 때문이다. 이는 에펠탑(324m)과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6시간 동안 지속되었으며 화산재와 유독 가스가 하늘로 1,500m까지 날아갔다고 하니 위력을 짐작할만하다.
2024년 하와이 여행 때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빅아일랜드의 화산이 있는 분화구였다. 특히 2022년 11월 27일 밤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마우나로아 화산폭발로 많은 피해를 입어서 아직도 복구가 되지 않았다고 하여 킬라우에아 화산을 가게 된 것이다.
빅 아일랜드는 여러 차례의 분화구활동으로 식물이 잘 자라지 않아 검은 현무암 용암들만 있는 황폐한 곳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킬라우에야화산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고, 화산재 위에서도 가장 먼저 피어나는 오히아 레후아의 꽃이 곳곳에 피어 있어 용암이 흐른 땅처럼 생각되지 않은 아름다운 섬이었다. 분화구에 이르자 넓은 평원에 펼쳐진 고요한 광경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활화산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도로 중간의 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뜨거운 연기가 나오는 곳이었다. 그곳을 지나가려니 너무 뜨거워 얼굴을 가려야 했다.
분화구 정상에는 한쪽에서 여전히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다른 곳은 크고 넓은 오름의 분지를 보는 것처럼 평범하였다.
관광객들은 큰 분화구를 따라 트레킹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정이 바쁜 우리는 분화구를 바라보고 사진만 찍어야 했다. 땅속에서는 가까운 곳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데도 풀들이 자라고 가끔 큰 나무들이 있어서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와이 불꽃, 그 시작은 불의 여신, 펠레(Pele) 여신의 발걸음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펠레여신은 하와이 섬의 킬라우에아 화산에 정착해 “불의 집”을 만들어 화산을 일으키고, 땅을 만들며, 하와이의 대지를 형성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펠레는 파괴의 여신이면서도 동시에 창조의 존재로 여겨진다.
따라서 하와이 사람들은 화산 폭발을 단순한 자연재해로 보지 않는다.
“펠레가 깨어난다.” “펠레가 불을 뿜는다. 새 땅이 태어나는 중이다.”
그들에게 용암은 생명을 앗아가는 불길이 아니라,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창조의 손길로 여겨진다.
실제로, 용암이 흘러간 자리에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풀과 하와이 상징인 오히아 레후아 꽃이 활짝 피고, 마침내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된다. 이는 그들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든 순환과 재생의 철학이기도 하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은 절대 중심이 아니며 인간은 대지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내에 킬라우에아 방문자 센터(Kīlauea Visitor Center)에 가서 화산에 대한 여러 설명을 보고 들으니 하와이 원주민들의 철학에 저절로 마음이 겸손해진다.
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구를 걸으며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면서도, 동시에 그 일부가 된 듯한 강한 일체감을 느꼈다. 이런 화산 활동을 통해서 하와이 땅이 호수가 용암으로 채워지는 등 끊임없이 변화를 겪고, 우리는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지만 하와이섬도 조금씩 동양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몇백년 후에는 하와이섬이 우리나라와도 가깝게 있을지도 모른다.
하와이를 떠나 온 후, 나는 TV 화면 속 뉴스 영상에서 낯익은 풍경을 보았다. 내가 걸었던 바로 그 길, 내 숨이 잠시 멈췄던 그 분화구에서 불꽃이 다시 치솟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지구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의식 같았다. 사진으로 바라보니 무서울 만큼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다소 무섭기는 했으나 이 폭발이 잠시 멈추면 거대한 불길이 휩쓴 땅에서 꽃은 다시 피고, 동물들은 돌아오며, 하늘은 다시 맑아지리라.
매일 일상 속에서 지구가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인간중심으로 살아가며 고뇌하고 슬퍼하는 것에만 집착하다가 가끔씩 지진이나 자연재해를 당했을 때에야 비로소 지구가 살아움직인 다는 생각을 조금 한 것 아닐까?
자연은 매번 달라지고, 우리도 마찬가지이리라. 멈추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 속에서, 나도 자연의 일부로 어제와 조금 다른 하루를 살아가며, 생명이 죽고 다시 태어나고를 반복하는 우주의 순환 속에 빨려 들어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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