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나는 38년 동안 영어교사로 살아오며, 작가가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다. 작가는 나에게 너무 이상적이고 먼 존재였으며, 글쓰기의 길은 어렵고 두려운 과정으로만 느껴졌다. 특히 시와 수필은 관심 밖이었고, 시집을 사서 읽은 기억조차 드물었다. 내가 사랑한 것은 언제나 소설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의 소설은 인간의 심리를 해부하듯 파고들었고, 그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갈 만큼 강렬했다. 특히『백치』를 읽으며, 정신병동에서 사회로 돌아온 한 남자의 내면을 집요하게 묘사하는 장면에 전율했다. 마치 의사가 신경을 헤집으며 수술하듯,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그의 문장 속에서 나는 언젠가는 소설을 쓰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젊은 예술가의 초상』등 의식의 흐름 기법을 배우며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 날,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 독후감 공모에서 내 글이 수업 시간에 소개되었는데, 교수님께서 내 글을 <여성의 의식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고 칭찬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글쓰기에 대한 작은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교사로서의 삶은 내 꿈을 잊게 만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방과 후 수업은 나를 지치게 했고, 반복되는 생활은 대학원 진학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그런데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는 좌절을 맛보았다. 글 한 장 한 장을 메우는 일이 너무도 버거웠고, 작가의 꿈은 그렇게 멀어져만 갔다.
퇴직 후, 나는 무작정 여행길에 올랐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한 달 이상 낯선 도시들을 방황했다. 그리스 여행 중, 나의 시간들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쓴 경험도 없고, 시집을 탐독한 적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솔직하게 내 감정을 기록할 수 있었다.
우연히 좋은 스승을 만나 1년 동안 도움을 받으며, 결국 『이카로스의 날개』와 『달빛 25시』라는 시집을 출간했고,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었다. 더 큰 기쁨은, 내가 한국문인협회에 투고한 「하늘연달」이 『한국 현대시를 빛낸 시인들』에 선정된 일이었다.
그 무렵, ‘브런치 작가’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전문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공간이라는 이야기에 주저했지만, 나는 여행기와 수필로 도전했다. 다행히 선정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글을 펼쳐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다.
브런치에서 쓴 수필들은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내 시보다 수필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는 말도 들었다. 처음에는 조회수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시간이 흐르며 숫자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기쁨>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소소한 일상과 감정이 글로써 살아있는 순간이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특히 여행기를 쓰는 과정은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는 듯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며, 그 여행하던 순간의 감정을 되살리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스쳐가는 여행이 아니라 진정한 내면을 살펴보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글쓰기는 이제 나에게 생업도, 의무도 아닌 또 하나의 인생 동반자가 되었다. 교실에서 영어 문장을 가르치던 손이 이제는 나만의 언어로 삶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젊음과 생기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세상과 마주하는 일이다.
내 마지막 꿈은 소설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 길이 쉽지 않을 것을 잘 알지만, 오랜 세월 교사로, 시인으로, 브런치 작가로 살아오며 쌓아온 나의 경험과 감정이 소설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기를 기대해 본다. 내 삶과 경험을 소재로 단편소설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늘려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언젠가, 내가 읽으며 감동했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내가 써 내려간 문장의 한 구절이 한 사람의 마음에 닿아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작가로서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