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삼 Mar 28. 2017

퇴사에 실패했다

담담하게 적어보는 과거 회상-1


퇴사에 실패했다.



사실 이 사건은 시간이 조금 많이 지난 일이다. 나는 작년 하반기부터 위태위태 하긴 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이 일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직원을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너무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후에 진로 결정을 한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흔히 말하는 권태기가 온 듯했다. 그래도 참을만했다. 어차피 일이라는 것은 모두 다 힘들고 괴로운 법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뽀로로 같은 삶이 아니겠는가. 노는 게 제일 좋은!


그러다 어느 한 사건으로 인해 각성을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싶은, 그런 굳은 마음 가짐. 그 전까지만 해도 더럽고 힘들지만 그래도 참고 이겨 내다보면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겠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 왔는데 그 모든 마음가짐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노동은 고되어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대인관계가 엉망이 되거나, 혹은 엄청난 상사를 만나게 된다면 소위 말하는 아무리 꿀을 빠는 일이라 할지라도 뛰쳐나오게 되어있다. 내가 그랬다. 믿고 평생을 따르리라, 마음먹었던 상사에게 엄청난 통수를 맞았다. 이 자리에서 밝히기엔 너무도 부끄럽고, 개인적인 일이라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중요한 건, 나는 배신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와서 갈 곳 없는 수재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일이 너무 고돼서, 대체 내가 왜 이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가며 일을 해야 하는 걸까 하고. 억울하고, 슬프고, 짜증도 나고, 화도 많이 났다. 그래서 상사에게 울면서 말했다. 퇴사하고 싶어요, 라고. 그게 작년 9월 말 정도였을 거다. 그동안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장난으로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저때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정이란 정이 겨울을 맞이하는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내 고백 아닌 고백을 들은 상사는 내 퇴사는 자기의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내 뜻을 존중하지만 이 일은 점장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던 찰나 기가 막힌 이직 자리도 생겼다. 지인이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후임으로 나를 추천하겠다고 했다.


내가 하던 일은 패밀리 레스토랑 홀 파트여서 일은 항상 고되었다. 구두를 신고, 짧게는 8시간에서 길게는 11시간도 서있는다. 서있다가, 걷다가. 고객들이 먹은 접시를 정리하고, 나가면 치웠다가 정리한 자리로 안내를 한다. 자리가 없으면 대기를 잡고 배고픔에 한껏 신경이 예민한 그들을 상대를 하다가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성을 내는 사람의 계산을 도왔다. 나는 점심과 저녁 사이의 애매한 시간대에 고작 한 끼만 먹고 일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한 시간 동안 허겁지겁 밥을 먹고 들어와서 접시와 컵 등 기물의 물기를 닦아서 채우고, 음식이 없으면 주방에 요청해서 음식을 채우고 나른다. 정말 쉴 새가 없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노동량에 비해 많지 않았다. 물론 이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다들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라 말하지만, 이건 언제나 악습일 뿐이다. 아닌 건, 아닌 거다. 과거와 비교해서 지금이 나으니 좋은 환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을 하던 나에게 들어온 이직 제의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일단 사무직이다. 근무 내내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정시 퇴근. 야근 따위는 없다고 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경우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생이 아니고는 모든 퇴근은 항상 밀린다. 아이들이 일을 잘 못하면 그 케어를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무직에 비하면 매일 야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언제나 추가 수당이 발생했으니까. 그리고 연차 사용을 눈치 안 보고 굉장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란다. 나는 연차를 일 년에 두 번, 그것도 눈치 보다가 굉장히 선심 쓰듯이 쓰게 해줬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중 가장 매력적인 조건은 월급이었다. 내가 지금 받는 것보다 50-60은 더 받는 데다가 연봉 협상 후엔 더 올라갈 수도 있단다. 이 말을 듣고 나니 퇴사 욕구는 정말 머리끝까지 솟았다. 


그래서 점장님께 말했다. 



점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 퇴사하고 싶습니다. 11월 15일까지만 하려구요. 갈 곳도 있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내 퇴사 계획은 아주 산산이 부서졌다. 


안돼. 너 거기 가지 마. 거기 가서 뭐하려고. 거긴 10년 있어도 계속 그 월급일 거야. 그건 네 취미로만 해.


저는 정말 이 일이 안 맞는 것 같아요. 정말 질렸어요. 일이 너무 힘들고 하기 싫어요.


너 이제 이 일, 몇 년 했니? 난 너보다 두세 배는 더 했어. 그런 내 앞에서 질렸다는 말을 하니? 그리고 내가 본 애들 중에 네가 이 일이 가장 잘 맞아 보이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못 들은 걸로 할게. 그리고 너 부모님을 생각해. 네 아버지가 언제까지 수입이 있을 거 같아? 아버지가 못하시면 네가 집안의 가장 아냐? 얌전히 이거나 해.



아, 저게 대체 무슨 망언이란 말인가. 철저한 본인의 기준하에 다른 의견은 다 무시하고, 무조건 안 된단다. 물론 말하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상대방의 미래가 걱정돼서 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듣는 입장에선 어차피 내 인생이고, 남이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리 말할 수 있을까 싶다.


했던 일의 특성상, 내 직급의 퇴사는 점장의 승인이 있어야지만 처리가 되는 일이라 결국 나는 퇴사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직? 물 건너 간 건 당연하고. 그렇게 나는 10월에 퇴사에 실패했고 3개월을 더 기다린 후에야 다시 한번 퇴사 이야기를 꺼낼 수가 있었다.







그래, 분명 내가 이 매거진에 썼던 글도 지친 것 같다. 퇴사하고 싶다. 라고 썼던 것 같다. 그때의 그 감정이 쭉 이어져 온 걸 보니, 정말 지쳤구나 싶다.


커버 사진은 저 때 당시 찍었던 사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