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버다. 즉 이발사다.
나는 내 생에 이발사라는 직업과 인연이 있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아니 번개 맞아 죽을 확률보다 더 없을 거라고 여겼다.
인생 제2의 직업을 생각할 때도 이발사는 나의 희망 직업군엔 없었다.
스쳐 지나간 한밤의 꿈에서 조차도,
전혀, never, 생각지도 않았던 거다.
이ㆍ미용실이 발에 치이 듯 많이 있어도, 이 직업으로 이름도 날리고, 만족하고,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있지만, 나에겐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렸고 관심도 없었다.
운명인지, 팔자인지, 아님 궁해서....,
생판 모르는 세계에 발을 담그고 일을 하고 있으니 인생이란 아이러니할 뿐이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더니.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 일까?
오직 나만의 생각이지만 이발사라는 호칭은 옛날 통닭집의 크라프트 포장지 같다면, 바버는 브랜드 치킨집의 칼라 포장지 같다고나 할까.
디자이너도 칼라 포장지 이긴 하지만, 이건 내가 지금까지 꼬리표처럼 달고 있는 또 다른 직업이라 신선함도 없고 식상하다.
그래도 외국어가 조금은 있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나의 얄팍한 자존심을 위해 난 바버가 좋고 이렇게 불려지고 싶다.
쟝 바버를 잇는 남다른 순수 혈통 같은 느낌으로...
내가 바버의 세계에 발을 디딘 건 햇수로 삼 년.
정확히는 1년 반은 샵에서 5개월은 자격증 준비로 보낸 시간이다.
햇병아리 바버인 셈이다.
취업도 스탭도 할 수 없는 경력이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21C,
AI가 생활 곳곳에 파고들고 우리의 삶을 생각보다 빨리 바꾸고 있는 시대,
앞으로 생을 위한 직업이 불투명한 시대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로 갖고 있던 직업도 사라져 버리는 요즘,
내 나이 50대에 앞으로 남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직업을 고르고 고른 게 바버였다.
또한 AI가 잠식하고 있는 직업 중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되어서다.
(실은 50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어서 이고, 늦었지만 그래도 빠른 거라고 생각될 때 가위 들고 세계여행을 꿈꾸며...,)
막상 내키진 않았다.
무시했었다.
떳떳하지도 않았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내겐 귀천이 있었다.
난 폼나게 살고 싶었다.
내 나이 50 너머서 까지 일하며 산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냥 내 계획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싫었다.
그래서 업신여기고 싫어했다.(철이 덜 들었다)
하지만 현실이 날 길들였다.
노년을 위해 벌어놓은 것도 없고, 사돈의 팔촌까지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상속받을 재산도 없으며, 천만 분의 행운을 거머쥘 인생 역전의 운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나이만 들고 시간만 까먹을 것 같아 울며 겨자 먹 듯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 나의 속도 모르고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멋진 직업이라고, 정년이 없는 평생 직업이라고 할 때마다, 평생을 노동만 하다 살라는 말로 들려서 기분이 많이 상하고 부아가 욱 하고 치밀어 올랐다.
이 말에 난 뼈 있는 말로 받아치기도 했고, 때론 "앞으로 몇십 동안은 AI가 머리는 못 깍지 않을까요!"라고 나의 선택을 합리화하기까지 해서 불편한 내 맘을 달래기도 했다.
참! 삐딱하게 보았고, 좋아도 싫어했다.
그래도 나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었나 보다.
이용사는 국가 자격증이라 필기와 실기를 보고 합격해야 가위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난 필기와 실기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고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면허증도 발급받아 바버로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따름이다.
으슥!!!
이런 애송이인 나를 샵에선 노련하고 경력이 많은 바버처럼 포장하고 있다.(나이도 한 몫하고 있다)
어떤 머리든 실크 결 머리로 만들어 주는 부드러운 빗질,
평범한 남자를 멋진 신사로 보이게 만드는 마법의 분무질,
최면을 걸듯 '삭삭삭'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싱글링,
춘향이가 그네를 타듯 부드럽고 능숙한 클리퍼 시술의 손목 스냅,
왼 무릎, 오른 무릎, 나빌레라 같은 시술 동작 등, 모든 것을 노련한 전문가처럼 그럴싸하게 눈속임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몰라도 아는 척하는 능숙한 말솜씨까지 더 해져 누가 봐도 비달 사순으로 착각할 정도니 나도 깜짝 놀랄 따름이다.
마치, 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영화 'Catch me if you can'에서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 보다 더 깜쪽 같은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에게 속고 있는 건지 그들이 날 속이는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누군가는 속고 있는 건 사실일 것이다.
아마 나에게 머리를 맡기는 그들은 이런 나의 모습에서 감출 수 없는 진실을 보고, 날 불쌍하고 애처롭게 여기며, 동정심에 순순히 그들의 머리를 나에게 내맡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난 나의 완벽한 사기극에 도취되어 오늘도 '삭삭삭' 황홀한 싱글링으로 그들 앞에서 그들이 원하는, 그들만을 위한 연극을 하고 있다.
주인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