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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로 Dec 30. 2021

                      집사가 된 바버

내가 바버로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여름으로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지만 아침 햇살은 말복의 한 낮처럼 무겁고 두터웠다.

기는 묵직한 습기를 품에 안았고 바람은 이 습기를 허공에 한 줌씩 흩뿌리고 지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서서히 달궈진 회색의 아스팔트가 가스불 위에 놓인 오징어처럼 점점 하얗게 변해갈 때쯤,

그 녀석은 열린 출입구 앞에, 앞 두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다소곳이 앉아 매장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당당하게 훔쳐보고 있었다.

당당한 모습은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았고, 녀석의 아우라는 마법사의 전령 같은, 앞으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듯 한 묘한 신비감을 풍기고 있었다.

몸은 짙은 호피무늬로 야생보다 더 위험한 도심의 길거리에서 생존하기 위한 민첩함과 단단한 근육을 숨기고 있고, 바늘구멍처럼 아주 작게 뜬 동그란 검은 눈동자는 점찍은 먹잇감을 바라보듯 흔들림이 없었다.

물음표처럼 휘어진 꼬리는 이성을 유혹하듯, 사냥을 시작하기 전 냉정한 침묵을 즐기듯 살랑거렸고, 중성화 표식을 한 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범상치 않은 신분을 나타내는 훈장처럼 모든 걸 집어삼킬 것 같은  발산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무방비 상태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당당함에  난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한편으론 안아보싶은 맘이 공갈빵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이내 납작하게 가라앉았다.

움찔 놀란 내 모습에 냥이가 도망갈까 봐 애써 태연한 , 전혀 관심이 없는 척 곁눈질만 하고 있었다.

순간,  녀석이 나에게 엄청난 큰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은 생각이 내 뇌리를 퍽하고 걷어찼다.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물고 나오는  머릿속 엉뚱한 생각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빈 깡통처럼 요란하고 시끄러웠다.

"왜? 여기 와 있을까?"

"혹시 나에게도....."

"전생에 나와 무슨....."

허황된 생각은 유턴 없는 일방통행을 끝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길냥이들은 사람들을 피하고 숨어 다니는데 저놈은 저렇게 당당하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 상황.

나에게도 아무나 겪을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난 살면서 꼭 한 번은 이런 신기한 일경험해 보고 싶었다.

하늘이 내게 주는 엄청난 행운 같은 것...

TV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아주 특별한 일을...

길냥이로 인해 인생이 바뀐 어느 영국인처럼.

나에게도 그런 인생역전의 운이 올 것 같은 짜릿한 기분에 마른침이 목구멍을 힘들게 타고 넘어갔고, 이 행운을 잡아야 한다는 간절한 생각에  달았을 때 훅 하고 날아든 말 한마디에 한 순간의 달콤함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야! 고양이다"

"쟤, 밥 달라고 그러나 봐"

"그래, 밥"

아! 지금껏 일들은 나의 단순하고 허황된 상상이 그려놓은 삼류소설이란 걸 안 순간 한없이 부푼 내 맘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발아래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건가...."

동물농장에도 나오지 못할 아주 평범한 일일 뿐이었다.

사실, 이 녀석은 이 구역의 터줏대감처럼 새로 온 이방인을 길들이기 위한 텃세를 부리러 온 거였다.

한참을 당당하게 앉아 있던 녀석은 밥이란 말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입이 찢어지라 하품을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일러주듯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날 똑바로 쳐다보면서 혀를 날름날름, 눈을 찡끗, 머리를 앞뒤 좌우로 불규칙적으로 까딱거렸다.

모스부호처럼 날아드는 냥이의 메시지를 해석하느라  몸의 모든 신경세포들은 긴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정신없이 었다.

그 메시지는 이랬다.

"내가 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게!"

"이제부터 당신은 나의 집사가 된 거야."

"내가 관할하는 이 구역에서 당신의 서열은 20번째쯤 걸쎄."

"앞으로, 밤새 가게 앞이 깨끗해지길 원한다면 알아서 잘하라고."

"그럼,  봄새."

"아! 그리고 내가 식사할 땐 자리를 비켜주게."

"서너 걸음 떨어져 있으면 될 거야,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네."

"내가 좀 예민하거든."

그 녀석은 이렇게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남기고는 뒤돌아 천천히 사라졌다.

그날 이후부터 그 녀석과 나는 주인과 집사로 신분이 나눠지게 되었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찾아와 밥을 먹고 다.

많게는 네다섯 번이 넘게 온다.

근데, 밥값은 다 외상이며 고맙다는 말도 없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래도 언젠가 나에게 올지 모를 뜻밖의 행운을 기대하며, 나는 정성을 다해 매일매일 주인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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