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로 Jan 17. 2022

똘방똘방

그는 두터운 외투를 뚝하고 던지듯 의자에 몸을 던졌다.

그는 똑같은 느낌으로 "똘방 똘방은 어디 갔나?"하고 말을 던졌다.

"오늘은 쉬는 날이요."

"왜요?" 하고 나는 되물었다.

"아니 안 보여서"

"시원하게 깎아 두가."

"어~, 오늘도 술 드셨어요."

"술 드시고 오시면 저흰 커트 안 해드려요."

"점심 먹으면서 한 병 먹었지."

"다음엔 안 먹고 올게."

"술을 이렇게 매일매일 드세요?"

"그럼, 밥 먹을 때 한 병씩 먹지."

그는 솔직한 사람이다.

한 잔도 아니고 한 병이라고 정확히 말한다.

두 병이면 두 병이라고 한다.

그는 여든이 넘은 해병대 출신 노인네다.

그는 남루한 옷차림에 단벌 신사로 항상 취기가 남아있는 행동거지와 조금 어눌한 말투로 선 듯 다가가기가 꺼려지지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깔려있는 따뜻함이 보여서 좋다.

그에게 사탕 한 알도 껌 하나도 얻어먹지 않았지만,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눈도장을 찍어서인지 정이 들었다.

그는 오다가다 "어이, 믹스 커피 한 잔 두가."하고 샵으로 들어온다.

"코로나로 안에선 못 드세요. 나가서 드시는 거 아시죠!"

"아, 그럼"

"지랄, 이놈의 코로나...."

이러쿵저러쿵, 그는 내가 하고픈 말을 다하고 간다.

"그럼, 오늘도 장사 잘 돼라."

이런 그가 언제부턴가 보이질 않는다.

알 수 없는 찜찜함이 담쟁이처럼 스멀스멀 목덜미를 타고 시커멓게 올라왔다.

걱정돼서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그를 알만한 분이나 같이 다니셨던 분들에게 안부를 물어보지만 전혀 이득이 없었다.

어럽게 알아낸 전화번호로 전활 해도 안 받는다.

불길한 생각이 고장 난 전구처럼 깜빡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봄 볕에 녹아 사라지듯이 내 가슴속에서 그가 서서히 잊힐 때쯤, 중년의 여인과 환자복에 외투를 걸친 노인네가 샵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한참 후, 차례가 된 노인네는 자리에 앉으며 "내 모르겠나"하고 말을 던졌다.

"글쎄요. 누구신지~"하고 말꼬리를 흐리는데, "나다"하고 그는 얼른 내 말을 덮었다.

"어~~"하고 말을 못 맺고 있는데 같이 온 여인이 "저희 아버지께서 여기 한 번 와야 된다고 하셔서 이렇게 왔어요"

그녀는 노인네의 딸이었다.

그녀로부터 그간의 일을 들었다.

그는 갑자기 쓰러져 저 세상 문턱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며 많이 호전된 상태라고 한다.

"가 날 꼼짝 못 하게 해서 나올 수가 없다."

"전화도 못하게 하구...."

"근데, 똘방 똘방은 없나?"

그간 시리고 허전했던 내 가슴 한편에 선 서서히 온기가 돌고 있었다.

그를 길을 걷다 우연히 부딪쳐도 아무 말 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 같이 잊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날 한 번 더 돌아보며 가벼운 인사를 남기고 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너무너무 고맙고 따뜻했다.

난 이런 감정을 숨기려고 아이처럼 투정 부리듯 다급하게 그의 말꼬리를 자르며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

"시원하게 깎아두가."

그렇게 그는 바람처럼 왔다 갔다.

작가의 이전글 집사가 된 바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