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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로 Jul 09. 2022

슬금슬금 그 녀석의 염탐

어느 날,

그 녀석이 열린 문으로 능구렁이 담 넘듯이 슬금슬금 기어서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늘어진 배가 땅에 닿을 듯, 코가 바닥에 닿을 듯 몸을 바짝 낮추고는 달팽이보다 더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딛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도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해서 인지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직진만 하고 있었다.

곁눈 도 없이 오직 앞으로똑바로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주 신중해서 보고 있는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무언가에 홀린 것은 아닌지 머리를 흔들고 눈을 깜박였지만 분명히 그 녀석이 내 눈앞에 있었다.

나와 일면식이 없었다그 녀석은 영락없는 불청객이었다.

도둑고양이가 들어와도 신기한 일인데....

아무리 매장 안으로 유인해도 꿈쩍도 않던 녀석이 제 발로 걸어서 들어오니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놀라고 흥분된 마음에 "악"하고 비명이 튀어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그 녀석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손짓 발짓으로 옆에 있는 동료에게 이 상황을 설명한다호들갑을 떨었다.

그 녀석과 내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서로 조심스러웠다.

서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했다.

그 녀석과 나는 술래에게 들키지 않게 숨소리도 죽이고 발걸음도 사뿐히 내딛고 옷이 스치는 소리까지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눈은 그 녀석의 동태를 살피는데만 고정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녀석이 날 찾을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 해졌다.

그 녀석이 점점 더 가게 안으로 들어올수록 난 들키지 않기 위해 그 녀석과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웬일일까?

무슨 영문으로 대담한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호기심인가?

어느 정도 친숙해져서 일까?

아님, 팽팽한 고무줄 같은 경계심을 늦춘 것일까?

암튼, 나에겐 생각도 못한 놀라운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이 복잡해도 나의 시선은 그 녀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녀석 하고 대치하고 있는 이런 정적인 상황이 점점 답답하고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시곗바늘이 두 세 바퀴 돌아서 제자리에 온 듯 시간이 많이 흘러간 것 같았다.

그 순간 가게 중앙까지 흔들림 없이 직진만 하던 녀석이 멈춰 섰다.

그러고는 꼼짝하지 않는다.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박제처럼 서 있다.

아주 잠깐이지만 세상이 멈춘 듯이 너무 조용해졌다.

그 녀석은 비밀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 같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찰나의 시간이지만 녀석은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

꼼짝 않고 서 있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나의 호기심은 가스불 위에서 끓고 있는 양은 냄비처럼 달아올랐다.

그 녀석은 계획한 일을 포기한 건지, 무언가를 깨달은 건지 아주 느리게 몸을 돌려 오던 길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인지 돌아가는 뒷모습은 패잔병처럼 쓸쓸해 보였다.

그 녀석이 불쌍해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알 수 없는 그 녀석의 행동이 노스님의 선문답 같은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괜한 심술이 나의 여섯 번째 갈비뼈 사이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가게 문을 닫을까!"

"쟤를 잡아서 품에 안아 볼까."

"......"

"냥아"하고 불러볼까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정신없이 드는데 그래도 앞으로 순탄한 집사 생활을 위해 그 녀석을 곱게 보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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