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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정 Jan 07. 2022

너는 너무 순진한 거 같아

순진하게 세워본 새해 목표


 일전 친구들이 나를 두고 그런 대화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걔는 너무 순진해. 나는 나 스스로 보통 사람만큼 다른 사람을 의심하면서 살고 있다고 믿었기에,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순진하다기보다는 넌 그냥 사람을 잘 믿지 의심 하나 없이. 부연설명에 차마 반박은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영악하다고 믿는 사람만큼 스스로를 순진하다고 하는 사람도 꼴 보기 싫긴 마찬가진데, 어쩐지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나는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다. 세상만사가 궁금하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할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지는 온갖 기쁨과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말을 할 때마다 덥썩덥썩 믿는다.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내가 구태여 의심할 필요도 없을테고. 사실은 의심하는 게 무섭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세상이 무서웠고, 이 세상에서 적응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왜 살고 있는지.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겪지 않아도 될 괴로움까지 싸안고 살았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 속내에 대한 짐작까지 얹는다면, 버티지 못할 만큼 무거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을 곧잘 믿는다. 친구들이 말한 '다른 사람을 잘 믿는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타인이 선할 것임을 상정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선하다고 믿는 사람은 선할 것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래서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을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한다. 설령 아니더라도, 내 태도가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하며. 멍청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마음만큼은 정말 편하다. 당해봐야 내 손해, 내가 남 손해 입혀서 또 생각을 끌어안고 고생하는 것보단 낫다.


 어쩌면 내가 아직도 너무 어리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믿음이 편한 건 결국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거니까. 혹은 일전에 쓴대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사람으로 취급을 안해서 그럴 수도 있고. 그래도 나는 가능한 이런 순진함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보려고 한다. 더 이상의 생각을 얹고 괴로워하기 싫으니까.


  청소년기 읽었던 책 중에 내게 가장 영향을 줬던 책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이었다. 그 때 역시 많은 생각을 껴안고 살고 있었기에, 덧없음에 대한 이야기가 참 좋았다. 나는 나 스스로 느낄만큼 치졸한 사람이다. 그래서 덧없음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크게 열리는 기분이 든다. 여전히 나는 치졸하지만, 덧없음을 생각할 때마다 삶에서 한발짝 떨어질 여유를 갖게된다. 같은 시기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라는 말도 듣게 되었다. 처음엔 웃었다. 나는 내일 죽을 거면 학교도 학원도 안가고 그냥 막 놀건데. 매일매일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먼 그게 삶이 되나. 하지만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는 말은 하루를 마치고 눈을 감는 순간 이 생이 끝나더라도 한치 후회도 없게, 평범한 일상에 충실하라는 말이었다는 걸. 결과가 아닌 과정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는 걸.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덧없는 삶, 매일 충실하게 살자. 나의 행복을 위해.


 우울증이 호전되며 스스로 가장 많이 했던 다짐은 "마음은 대충, 몸은 열심히" 였다. 생각은 어떤 답도 내려주지 않지만, 열심히 움직인 몸은 적어도 자기만족이라는 결과 하나라도 낸다. 사실은 아직도 마음만 열심히 몸은 대충 살고 있지만, 이 말을 계속 꺼내고 다듬으며 이번 한 해를 살아보려 한다.


 새해 처음으로 들은 곡이 그 한 해의 운수를 결정짓는다는 인터넷 밈이 있다. 올해 내 선곡은 나훈아의 '공'이었다. 살다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라는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치졸한 나에게 꼭 필요한 가사다. 나는 순진하기로 했고, 덧없음을 기억하기로 했고, 마음은 대충 몸은 열심히 살기로 했다. 아마 못할 것이다. 온전히 순진하지 못하고 그냥 생각하기 귀찮다고 순진함을 핑계로 가져올 것이고, 덧없음을 기억하면서도 한없이 치졸할 것이고 여전히 마음만 열심히 몸은 대충 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올 한 해, 지금까지 내린 결론들을 목표로 삼기로는 했다. 명시가 주는 힘을 믿으니까.


 이런 결론을 보면 누군가는 또 멍청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떤 성취도 바라지 않고 순간순간에만 금급한 모습이니까. 청소년기 내내 나를 수녀원에 보내려고 하던 많은 본당 수녀님들이 말한대로 내가 세상과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세상을 믿는 게 좋고,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이 부질없는 게 좋다. 부질없는 세상,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오늘에 머무르며 나는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앞으로 네 계절이 다 지나고 나는 또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서 있을지 모르지만, 그 하나만은 믿어본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살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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