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내가 유머러스하다 믿고 살아요.
최근 풀타임 근무를 시작했다. 하루 여덟시간 반을 직장에 있고 50분씩을 떼어 출퇴근을 하고 출근 준비며 퇴근 후 짐 정리를 합쳐 두 시간 정도가 걸리니 대충 하루의 반을 일에 바치고 있는 셈이다. 장기간 우울증을 앓으며 사회생활을 포기했었고 온 몸에 힘이 없어 서너 시간 외출도 못 버텼던 터, 한달 여의 직장 생활은 꼭 재활처럼 어느 정도 건강의 기반이 되기도 했지만, 풀리지 않는 노독처럼 깊게 고이는 피로감을 남겼다.
처서가 지나자마자 불어오는 찬바람에 소름이 돋고 몸에 냉기가 한 번 돌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참을 있어야만 추위가 가셨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살기 시작한 집이 8월 한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서늘한 것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지친 몸이어서 그런지 추위를 견디는 게 힘들어져 대낮부터 아우터를 입고 다녔다.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로 이사한 친구 집 집들이를 갔다가 홍삼즙을 한 팩 얻어왔다. 삼 한 팩만 마셔도 추운 거 좀 가신대. 그 얄팍한 팩을 일주일 가까이 냉장고에 넣어놨다. 예상되는 씁쓰름함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늦은 퇴근을 하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또다시 한기가 들었다. 하지만 9월 중순 보일러를 트는 건 우스운 일인 걸 알았고 이깟 추위야 이불이나 덮고 있으면 될 일임을 알아서 아까운 가스를 쓰지는 않았다. 대신 꺼낸 게 친구에게 받은 홍삼즙이었다. 컵을 씻기가 싫어 팩 째로 마시려고 가위를 꺼냈다. 설거지를 하고 살강에 올려둔 가위를 꺼내는데, 같이 얹어둔 후라이팬이 큰 소리를 내며 싱크대에 떨어졌다. 빌린 집에 손상 남기기 싫어 질겁하며 싱크대를 만져보니 다행히 상한 곳은 없었다. 후라이팬도 마찬가지였다. 얄팍하고 작은 다이소표 계란말이용 후라이팬이었지만 찌그러진 곳 하나 없었다. 다이소 후라이팬이 튼튼도 하네. 혼잣말처럼 생각이 들었고 곧이어 아주 웃긴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바닷가에 방을 잡아 둔 때였다. 죽고 싶어서 약을 몇 백 정 준비하고도 그걸로는 죽지 않을 걸 알아 다이소에 들러 테이프 한 뭉텅이와 번개탄, 가스버너와 부탄가스 그리고 후라이팬을 하나 샀다. 마무리를 함께하기로 한 친구와 국밥을 한 그릇씩 먹고 나왔다. 밤바다에 한참 서서 파도를 구경하다, 번개탄이 제대로 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서로의 담뱃불을 붙여주며 후라이팬으로 번개탄을 두드려 부수기로 했다. 내가 담배를 빨아들이는 동안은 친구가, 친구가 잠깐 쉬면서는 내가 차례로 포장도 뜯지 않은 번개탄을 두들겼다. 잔뜩 번화한 밤바다의 한적한 구석 주차장에서 우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장식석 위에 올려진 번개탄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번개탄에는 조금의 흠집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찌그러진 후라이팬을 보고 한참 웃었다. 웃으면서도 수없이 번개탄을 두들겼다. 후라이팬 찌그러진 자국이 깊어질 때마다 우리는 소리내어 웃었다. 번개탄 봉투 안쪽에 가루가 번져 거뭇해졌지만 결국 방에 들고 들어간 번개탄엔 실금 하나 가 있지 않았다. 방에 들어와 작은 병에 담아온 보드카를 마시고 수백의 알약을 삼키고 토하고 삼키고 또 그걸 내리기 위해 술을 마시면서도, 나는 계속 실실 웃었다. 화장실 창문이 닫히지 않아 화장실 문틈까지도 테이프로 봉해야 했다. 약을 다 먹고 연기를 피울 쯤이 되자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문틈을 봉한 테이프를 뜯고 소변을 보고 다시 테이프로 문을 막았다. 그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 침대에 올라가 화재 감지기에 청테이프를 여러번 덧붙일 때도 나는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질까 조심하는 몸짓이 웃겨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모든 게 장난 같았고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마저도 비애감이 없다는 것까지도 우스웠다. 선택이 진지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진심으로 끝을 믿고 있었기에, 나는 그 모든 순간이 웃겼다. 그리고 이제와서 객관적으로 생각하기에도 자살을 공모한 친구 둘이 후라이팬으로 번개탄을 두드리고, 테이프를 붙여놓은 문을 뜯어 화장실에 가고, 또 그 순간까지 넘어지기 싫다고 중심을 잡는 그 모습은 웃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치도 진지한 적 없었던 성격 때문에 매사가 진지한 편이어서 더 그런걸까.
생각해보면 한 편의 희극같았다. 우리는 희극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그 모든 걸 했다. 미숙하고 서툴렀지만 또 그만큼 진심이었기에 그 상황들은 웃길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 뒤로도 무언가 물건을 사러 갔다가 번개탄을 볼 때마다 그 날 일을 생각하고 혼자 웃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우울증이 정말 많이 호전된 지금이야 그 희극적인 상황이야말로 우스울만큼 비참했다는 걸 알지만, 지금보다는 상태가 좋지 못했던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런 비극성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매사에 진지함 없이 농담으로만 일관하는 내게는 나의 자살시도 역시 농담거리에 불과했다. 친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종종 그런 농담을 했다. 내 선택에 상처가 없진 않았던 친구들은 투 쑨, 투 쑨 하며 농담을 말리고는 했다. 나는 오히려 그런 반응이 재미있어서 또 내 자살 시도가 내게 어떤 상처도 아니었다고 과시하고 싶어서 더 그런 농담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후라이팬으로 번개탄을 두들겨 팼었던 우스움은 어디에서도 말할 수 없었다. 웃긴 이야기는 맞지만, 아무도 웃지 않을 거 같아서.
나는 지금도 그 상황이 우습다. 사람은 원래 진지할 때가 가장 우습다는 사실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그냥 한 폭의 그림으로 보면 코미디 이상은 되지 못할 우스운 상황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어디에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아직 내게 웃기다는 건, 내가 아직도 병증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