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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정 Jul 29. 2021

나의 우울증 치료기 04

상담치료를 받았다


 연말 정산을 하던 엄마가 나의 통원 사실을 알고, 병원비를 내줄테니 좀 더 큰 병원에 가보자는 권유를 했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서울 한복판 대학병원. 아주 길고 긴 검사들을 끝내고서야 약을 타고 상담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 상담사 쪽 자리에는 새빨간 긴급 버튼이 있고 책상 위에는 티슈 박스가 올려진 그 상담실에 가기 위해서는 보호병동 안쪽까지 들어가야 했다. 사복을 입고 보호병동에 들어설 때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환자들을 보며, 이런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입원하는 걸까, 이 사람들은 얼마나 중증이기에 여기 와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졌다.


 상담을 해주는 레지던트는 참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게 미안했다.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의 역사를 스스로 돌아보는 것도 싫었다. 상담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다. 이 전 병원에서와 똑같이 농담으로 넘기려했지만, 그러기엔 상담시간으로 정해진 한 시간은 너무 길었다. 결국 내가 상담 주제로 잡은 건 엄마였다. 엄마.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양육자들의 슬하를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주양육자였던 엄마는 정말 큰 존재였다. 그래서 그 문제부터 해결해 보고 싶었다.


 엄마는 항상 바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고, 기억도 안날만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바쁘게 일만 했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쯤 부서가 바뀌어 근무 시간은 일정해졌지만, 평일 아침에는 출근을 했고 저녁에 잠시 들러 밥을 차려놓고 야근을 하러 갔다.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때마다 제삿상을 차리고 가지가지로 속썩이는 자식들한테 화도 내야했고, 변변한 직장 없이 집에서 담배 피우고 게임을 하면서도 자녀 양육이나 집안일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남편과 걸어서 5분도 안걸릴만큼 가까이 사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챙겨야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무서웠다. 무서웠다? 글쎄. 그냥 더 이상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래서 뭔가 바라는 게 있어도 말하지 않았고, 일상적인 고민도 그냥 사소한 잡담도 하지 않았다. 항상 피곤하고 바쁜 사람이니까. 그녀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녀의 남편이 외도를 한 후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나를 수 없이 폭행했을 때도,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무력하고 아무 위안도 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맞아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했을 것 같다. 그게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조용히 있는 것. 아무 저항도 하지 않는 것.


 상담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달이 넘기 전에 엄마와 편하게 말할  있는 사이가 됐다. 항상 나를 과묵한 막내라고 말하던 엄마가 얘는 입만 나발나발한다고 말할  있게  정도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시간 미뤄왔던 서로에 대한 이해가 목적이었기에 끝은 좋게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가정 내에서  자리를 찾게 되었다. 여전히 넘어야할 장벽은 많았지만, 엄마와 대화를 시작했다는 자체가  위로로 다가왔다.


 하지만 정작 상담실에 앉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나는 그게 부담스러워서 도망을 쳤다. 이번주는 상담 못갑니다. 다음주에 뵐 게요. 죄송합니다. 2주 뒤에 볼 수 있을까요? 나중에는 말 없이 가지 않았고 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까지 무시했다. 병원에 발길을 끊은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나는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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