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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정 Aug 18. 2021

나의 우울증 치료기 06

한 번쯤은 가볼 만 해, 보호병동.


 보호병동.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의 자극을 차단시키는 병동. 그래서 폐쇄병동이라고도 불렸던 곳. 상담치료를 받으며 보호병동에 들어갈 때마다 여기는 얼마나 아픈 사람들이 오는 걸까 스스로 생각했던 곳.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은 곳.


 '얼마나 아픈 사람'이 되어 입원했던 28일 동안, 내가 보호병동에 대해 느낀 감상은 딱 하나였다. 심심한 어린이집. 사사건건 돌봄과 보호를 받는 어린이집처럼 느껴졌다.


 내가 입원했던 병동의 일과는 이랬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다.) 오전 6시가 되면 간호사 선생님이 활력징후를 재러 오신다. 그냥 자고 있어도 된다. 7시엔 아침을 먹으라고 깨우고, 다 같이 식당에 모여 밥을 먹는다. 당뇨가 있는 사람은 당뇨식, 소화를 못하거나 식사가 어려우면 죽식 등 환자마다 자신에게 맞는 식단이 나온다. 쇠젓가락은 위험해서 나무젓가락만 지급된다. 그래도 숟가락은 쇠숟가락이다. 밥을 다 먹고 카트에 식판을 반납하면, 앞에 선 보호사가 슬쩍 보고 식사량을 기록한다. 아침을 먹고 30분 정도가 지나면 다들 개인 물컵에 물을 한 잔씩 받는다. 약을 먹어야 하거든. 약이 쌓여있는 카트 앞에 일렬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차례가 오면 손목의 인식표를 보여주고 생년월일과 이름을 말한다. 어차피 의료진과 서로 얼굴을 알지만, 본인 확인을 해야 약이 바뀌는 일이 없을 테니. 약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삼키고 입 안 검사도 한다. 약을 먹는 척만 하고 안 먹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약을 먹고 나면 오전 10시까지는 할 일이 없다. 나는 보통 잠을 잤다. 졸려서보다는 할 일이 없어서. 10시가 되면 프로그램을 한다.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음악 감상, 상호작용 연습…… 정말 어린이집에서 할만한 것들을 한다. 산책 프로그램도 있었다.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면 어렵고, 의사 판단 하에 산책이 허용된 환자들만 나갈 수 있다. 산책을 갈 때는 보통 의사 선생님이 따라 나오신다. 외부 자극과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서인지 숨겨져 있는 의료진용 엘레베이터를 타고 이동하고, 밖에서도 외부인들과 상호작용은 금지된다. 우리는 병원 앞에 내천가가 있어서 거길 걷고는 했다. 프로그램 참여는 개인 선택이다. 재미없고 귀찮으면 안해도 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주로 참여하신다. 나는 옆 베드를 쓰던 언니가 프로그램 꼬박꼬박 참여해야 상태 좋아진 걸로 판단해서 퇴원도 빨라질 수 있다고 말해줘서, 그래서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상관 없는 듯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나면 점심을 먹는다. 점심 저녁은 특식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일반식이 백반이라면 특식은 일품요리 위주로 나온다. 특식은 전날 아침 미리 식단표를 보고 선택하는데, 특수 식단이 필요한 사람들은 제외된다. 보통은 다들 특식을 선택해서 먹었다. 그 병원은 밥이 참 맛있기도 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이라고는 먹는 것 뿐이니까. 점심을 먹고 나면 또 30분 정도 후에 약을 먹는다. 똑같이 줄을 서서 본인 확인을 하고 약을 먹고 입 안을 보여준다. 물론 아침, 점심, 저녁을 막론하고 해당 시간 대 먹을 약이 없는 사람은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오후 3시까지는 할 일이 정말 없다. 티비가 있지만 공용이라 채널을 맘대로 돌리기도 어렵고, 싸이클이나 공용 서고, 탁구대도 있지만 그것도 10분 이상 하면 지겨워서 하기가 싫어진다. 환자들끼리 모여 떠들고, 간식도 먹고, 개인이 반입한 책도 읽지만 (반입 제한 권수는 없어서 무제한으로 들여놓을 수 있다. 다만 미리 검수를 받아야 하고, 가름끈은 모두 잘라야한다.)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시간이 안간다. 중간에 한 번 더 활력징후를 확인한다. 대변을 봤는지도 물어본다. 나흘 이상 대변을 못 보면 매일 먹는 약에 변비약이 추가된다. 오후 3시가 되면 면회가 있다. 매일은 아니고, 보호자도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 그나마도 보호자가 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 보호자를 만나 밀린 빨랫감을 전해주고, 보호자가 싸온 간식을 먹는다. 보호병동에서는 정말로 먹는 것 외엔 즐거움이 없다. 보호자를 통해 그때 그때 필요한 생필품을 받기도 한다. 물론 의료진 검수를 받은 것들만 가능하다. 30분의 짧은 면회가 끝나면 다시 지루한 시간이 시작된다. 시간이 되면 또 저녁을 먹고 약을 타 먹는다. 내가 입원한 병동은 면회가 없는 날 저녁엔 환자 동의를 얻어 노래방 기계를 켜줬다. 환자들 취향도 가지가지라 재밌을 때도 있지만 재미없을 때도 많다. 꼭 첫 곡으로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야만 하는 분이 계셨는데, 중간에 지루한 티를 내면 탬버린을 던지며 화를 내셨다. 소등 시간은 9시. 그전까지는 보통 다 같이 모여 TV를 봤다. 우리말겨루기를 보고 KBS 일일드라마까지 보고 나면 9시가 된다. 9시가 되면 칼같이 티비를 끄기 때문에, 가끔 드라마가 늘어지면 끝부분을 못 보기도 하고, 다음회 예고를 못 보기도 한다. 티비를 보는 중간에 또 활력징후를 확인한다. 9시가 넘으면 대충 세안을 하고 자러 간다. 9시는 소등 시간일 뿐 취침시간은 아니지만, 병실이나 복도의 불을 다 끄기 때문에 뭔가를 할 수는 없다. 안전을 위해 작은 전등을 곳곳에 켜놓아 불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뭔갈 하기엔 어둡고 잠들기엔 밝은 정도라 편하지는 않다. 잠을 청하기 세 시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으면, 그러니까 자정이 지나면 야간 근무를 하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취침 약을 요청할 수 있다. 그렇게 의료진의 보호 속에서 잠이 들면 하루를 또 넘기게 된다.


  이렇게 심심하게 보내냐고? 보호병동엔 반입이 금지되는 물건이 많아,   있는 일들이 적기 때문이다. , 타해 위험이 있는 환자들이 많아 , 가위  날카로운 물건은 당연히 반입 금지. 가끔 외출을 나갔다가 속옷에 숨겨오는 사람도 있어서 환복을   몸수색도 한다. 깎아 쓰는 필기구도 안된다. 플라스틱 소재의 필기구도 부러트리면 날카로워지니까 안된다. 종이 색연필과 플러스펜만   있다. 스프링이 있는 노트도 안되고, 아무튼 조금이라도 딱딱하고 날카로운  반입할  없다. 앞서 말했듯 책은 반입할  있지만 의료진의 검수를 거친다. 자극적이거나 상태를 악화시킬  있는 내용의 책은 안된다. 책에 붙어있는 가름끈도 자해 도구로 이용될  있어서 잘라야한다. 외부와의 차단이 목적인 병동이니, 당연히 통신기기는 반입 금지다.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PC, 그냥 피쳐폰마저도 들여올  없다. 병동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전자기기 전반이 반입 금지여서, MP3 들여올  없었다. 전화는 병동 내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전화카드나 티머니카드로 사용할  있다. 잔액이 부족하면 면회  보호자에게 충전을 부탁하면 된다. 병증에 따라 통화를   없거나 시간이 제한되는 환자들도 있다. 나는 아니어서 마음껏 전화를  수는 있었지만 늦은 오후가 아니면 다들 일상이 바빠 통화가 힘들었고 늦은 오후엔 전화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눈치가 보여  통화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말 많이 먹었다. 입원  주에는 약기운이  빠져 식욕도 없었고 도에  상처가 아파서 밥도  못먹었어서, 일주일만에 3kg 빠졌다. 그리고 퇴원할 때는 입원  보다 7kg 쪘다.  안에서는 정말로 먹는  외엔  일이 없었다. 또래 환자들과 떠들고 함께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썼지만, 가끔은 혼자 책을 읽기도 했지만  안에서는 정말로 심심했다. 속으로 300 세면 5분은 지나가니까, 300 세는 놀이도 많이 했다. 퇴원  병동 생활을 '디지털 디톡스'라고 부를 정도로, 인터넷과 접하는 것이 일상화된 나에게는 병동 생활이 정말 지루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사건들'도 많았고, 다들 비슷비슷한 정신질환 당사자들이었기에 할 수 있는 농담들도 많았고, 가끔 외출 외박을 나가는 것도 즐겁긴 했다. 하지만 갇혀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괴로웠다. 의사 면담 때 나는 자살 시도를 한 죄로 여기 갇히게 된 것 같다는 말을 했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답을 들었지만, 나는 그 후에도 한참 그 시절을 구금된 시절이라고 불렀다.


병원 내는 금연.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 담배를 피울 길이 없어서 병동 내에 있던 종이컵과 플러스펜으로 가짜 담배를 만들었다. 치약을 발라 얇게 만 종이컵을 넣어 멘솔향을 구현했다.


 그럼에도 나는 보호병동이 살면서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남들이 책임져주고, 나는 먹고 자고 싸기만 하는 환경은 많지 않으니까. 정말 지긋지긋하게 지루했지만, 내가 다시 상태가 나빠져서 또 입원을 하게 된다면 순순히 할 생각이다. 그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평안이 분명히 있으니.


 28일 동안의 병동 생활을 마치고 퇴원을 했다. 여름이 완연했고 나를 혼자 두기 불안했던 보호자 때문에 집에서도 보호자 없이 지낼 수 없는 '보호관찰' 기간에 들어갔다. 반년 동안 단 한 번도 혼자 있어본 적 없는 생활을 했다. 그렇게 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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