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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날들 Jul 12. 2024

겨울의 언어, 김겨울

<겨울의 언어>, 김겨울     

겨울은 향으로 온다. 바람이 면에서 선으로 불기 시작할 때 겨울은 감지된다. 길고 얇고, 뾰족해 콧속에서 와르르 산산조각이 나는 겨울바람에서는 차가운 결말과 냉랭한 시작의 냄새가 난다.(p.13)     


와, 이런 문장력이라니!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뒤끝이 없이 담백하고 탄탄하다. 유튜브 ’겨울 서점‘을 운영 중인 김겨울 작가님의 에세이. 모든 이슈가 유튜브에서 태어나고 사라지는 대 유튜브 시대에 그럼에도 ’책‘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책을 읽는 시간만큼 그 어떤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가장 깊은 수준의 경청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있어서 큰 위안이 된다.     


에세이는 파노라마처럼 흩어지는 삶의 어떤 순간을 작가만의 화법으로 포착한 아주 근사한 사진같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찰나를 가장 완벽한 단어들로 조합해 완성해 놓은.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마음에 담아놓고 싶은 장면(문장)들이 많다. 삶을 온몸으로 애정하고, 다감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김 책.           


<오늘의 밑줄>     

날이 맑을 때면 종종 광화문과 서촌을 간다.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한참 동안 구경하고,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경복궁역을 거쳐 서촌이나 인사동까지 천천히 걷는다. 눈에 보이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걸음마다 시간이 파스스 흩어지는 게 아주 마음에 든다.(p.69)     


삶은 바로 여기에 있고 그다음 몇 초간에도 있으며 바로 내일에도 있기 때문이다. 삶은 모든 때에 있으므로 매시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내가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 되기를 바랐다. 나에 점점 가까워지는 사람, 내가 아닌 부분을 줄여나가고 나인 부분을 늘려가는 삶.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 삶을 살기를. 그럴 수만 있다면.(p.83)     


통제 밖의 세계. 의미가 없는 삶. 그렇기에 겸손하게 노력하는 마음. 그것은 어느 순간 우리를 해방시킨다. 내가 자기혐오에 빠질 때마다 나의 못남을 탓할 때마다 나의 삶에 구멍이 나고 균열이 생긴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내가 나의 못남을 탓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나의 오만일지도 모른다고. 그만 투덜대고, 다시 한 발짝 내디뎌야 한다. 혼돈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반가이 맞이하며.(p.150)     


그 무엇보다 신애에게 가장 크게 배운 게 있다면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다. 내 앞에 정면으로 닥쳐오는 고난에 맞서기, 여러 선택지 중에서 빠르게 몇 개를 추려내기, 언제든 용기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내기... 그런 경험들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고 신애의 마음에 여러 흔적을 남겼다는 것을 안다. 온 마음과 몸으로 삶을 통과해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동시에 그 삶은 가장 살아 있는 이의 삶이 된다. 그런 삶은 늘 나에게 감탄과 경외의 대상이다.(p.215)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물론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다. 우리는 매일 뭔가를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일을 하러 가고, 피곤해하고, 커피를 들이부으며 일을 하고, 소셜미디어를 구경하고,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고 샤워를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각자 주어진 삶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하지만 내가 문득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p.237)     


하루의 커피 세 잔, 커피는 카페인 성분 때문에 실제로도 연료로 기능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의 연료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듯 커피를 준비하는 건 일종의 의식이다. 내가 지금부터 자리에 앉겠다는 다짐이다. 자리에 앉아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겠다는 신호다. 나는 나를 커피로 평생 속여왔기 때문에, 즉 매일 그날의 커피 덕분에 삶을 꽤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삶이 원래 견딜 만한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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