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무해한 순간들

조용한 행복

by 꿈꾸는 날들

언제부터인가 TV를 켜는 일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이야기들, 서로를 향한 비난과 다툼이 난무하고 끝없는 과시와 비교, 출처를 알 수 없는 과도한 정보들에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선 모두가 화려한 행복을 휘감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내 삶은 유난히 불행만 도드라져 보이는 묘한 소외감이 밀려들 때, 마음은 자주 지치고 바스락 거렸다.

혹시 또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 끝없는 불안을 조장하는 세상은 자꾸만 마음을 부대끼게 하고 탈이 나게 만든다. 열등감과 패배감에 휩싸일수록 스스로를 미워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게 했다. 그렇게 마음에 과부하가 걸릴 때면 찌들어버린 마음을 깨끗하게 빨고 탈탈 털어 햇볕에 말리듯 무해한 것들 곁에 마음을 걸어 둔다.

쌔근쌔근 잠든 아기의 사랑스러운 얼굴과 볕이 좋은 오후 바닥을 뒹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봉오리,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봄비의 소리, 나뭇잎 사이를 간지럽히듯 스쳐가는 바람의 손길, 아주 고요한 밤하늘의 별빛, 이제 막 흙을 뚫고 나온 작은 연둣빛 새싹, 폭닥이는 니트의 촉감,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마음을 나누는 시간, 조용하고 다정한 음악, 지친 하루의 끝에 보드라운 이불 안에서 잠드는 일.

이토록 무해한 것들이 주는 행복 곁에서 차분히 마음을 정화한다. 무해한 것들 곁에 있으면 그동안 잔뜩 힘주어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륵하고 풀리면서 안도하게 된다. 비로소 나란 사람이 한껏 무장해제가 되어 편안한 숨을 내쉴 수 있게 된다. 아무런 피로감도 없이 어떤 위화감도 없이 가장 나 다워질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

유난스럽지 않고 조용하고 따뜻한, 그래서 편안함을 선사해 주는 것들을 되도록이면 더 오래 바라보려고 한다. 너무 많은 자극과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무해한 것들 곁에 머무르는 순간을 자꾸만 더 애정하게 된다. 마음에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무언가를 계산하거나 부딪히고 긁히는 일 없이 불편한 생각이 들지 않게 해주는 것들. 초자극의 사회에서 무해력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런 순간들은 어떤 노력이나 커다란 에너지를 들이지 않아도 기쁨과 깊은 안정감을 선사해 준다. 잠시 멈춰 서서 이런 무해한 순간들을 알아차리고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게 해 준다. 우리는 종종 행복을 거창한 무언가에서 찾으려고 애쓰지만 의외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이토록 무해하고 사소한 것들 일 때가 많다.


무해한 것들을 바라보는 시간.


거창한 기쁨도, 대단한 성취도 없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게 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일지 모르지만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던 안도감으로 내 안의 작은 평안을 되찾게 해 준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으로 돌아왔다는 편안함. 무해한 것들은 그렇게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깊은 행복감을 선사해 준다. 행복한 삶이란 건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생에서 무해한 순간들을 얼마나 더 자주 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크고 화려하게 반짝이는 행복만을 좇느라 소중한 무해함들을 놓쳐버린다면 우린 결국 불행에 기우는 삶이 돼버릴지도.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처럼 내 곁에 있는 작고 무해한 행복들을 되도록이면 더 많이, 더 자주 발견하고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이토록 무해한 것들이 주는 행복.


누군가의 곁에서 나도 그렇게 무해한 사람으로 머무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필요 이상의 피로를 권하는 세상에서 매일 고단한 짐을 지고 사는 서로가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무엇도 비교하지 않는 가장 순수한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 무해한 순간들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지럽고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우리가 잠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해사한 순간을 선물해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도 없을 테니까.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