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내가 오래 독서해 온 바에 비추어 볼 때, 오만이란 정말 흔한 것이고, 인간 본성은 오만한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 확실해, 자신의 일부 자질에 대해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껴 본 일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 실제건 상상이건 허영심과 오만은 매우 달라. 종종 동의어처럼 쓰이긴 하지만 허영심에 들뜨지 않아도 오만할 수 있어. 오만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와 더 연관되어 있거든. 허영심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상관이 있고."(p.40)
그는 용모와 목소리와 몸가짐만으로 상대방에게 모든 미덕을 갖춘 사람으로 믿어 버리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p.355)
엘리자베스의 결혼관이 자신의 가족을 토대로 형성된 것이었다면, 그녀는 결혼의 행복과 안락한 가정에 대한 기대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젊음과 미모와 착해 보이는 성품에 반해 한 여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남자들의 눈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당연히 온순하고 착하게 보이게 마련이어서 막상 결혼하고 보니 머리도 좋지 않은 데다 마음도 좁고 편협한 여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에 대한 모든 애정을 잃고 말았다. 아내에 대한 존경과 존중, 신뢰는 영원히 사라졌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기대도 완전히 깨져버렸다.(p.405)
엘리자베스는 이전에도 종종 느꼈지만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던 일이 정작 이루어지고 나면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진정한 기쁨을 누리려면 자신의 소망과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을 정하고 기다림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으로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고 다시 실망할 순간을 대비해야 했다. (p.407)
다아시에 대한 그녀의 감정에는 존경심을 넘어선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또 다른 동기가 있었다. 그것은 한때 그녀를 사랑했고, 자신의 교만하고 신랄한 태도와 부당한 비난을 용서할 만큼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다아시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자신을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연한 해후를 통해서 다아시가 자신과 관계를 지속하기 원한다는 걸 알았고, 남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았고, 자신의 친척들에게 호감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누이동생에게 자기를 소개해 주는 배려까지 직접 목격했다. 그토록 자존심이 강한 다아시가 이렇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엘리자베스는 놀라움과 고마움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변한 것은 자신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p.451)
오랜만에 다시 꺼내어 읽게 된 책. 분명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읽는 마음이 달라져서 그런가? 감명 깊은 구절들도 다르고, 새로운 문장들도 보이고, 인물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제대로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여태까지 알고 있던 내용이 전부 오독 같았다. 18세기 영국,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여성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결혼이었다. '결혼의 조건'이냐 '사랑'이냐를 선택할 수 있던 상황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결혼은 필수적이었다. 궁핍한 생활을 모면할 수 있는 최상의 방지책처럼. 정략결혼의 폐해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대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결혼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 세속적인 유익을 위해 감정을 희생하는 결혼관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기존의 가치관을 따르기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행하는 데 주저함 없는 엘리자베스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게 되는 이야기.
나의 편견과 오만함은 무엇일까? 타인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그 사람을 단정 짓는 편견이 생기는 순간, 그 오만함이 관계에 가장 큰 장벽이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