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사람 마음을 훔쳐보는 재주'를 갖고 싶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나와 관련된 그 무엇에 대해서 그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싶었다. 초능력이 아니더라도 기계 하나쯤을 발명해 누군가의 신체에다 플러그 같은 걸 꽂고는 책장처럼 넘기면서 그의 마음을 훤히 읽을 수 있었음
했다. 아마도 사람을 좋아해서였으리라. (4# 언젠가 처음엔)
조금 가난한 색, 그래서 그 위에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싶은 색.
조금 모자란 색, 그래서 많이 배울 수 있는 색.
마음에 따라 두꺼울 수도, 얇을 수도 있는 색이다. 투명해 보일 수도 탁해 보일 수도 있는 색이다. 기분에 따라 그림이 많게 보일 수도, 글씨가 많게 보일 수도 있는 책과 같은 색깔이다.(25# 지랄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부분들을 쌓아가는 것이다. 고로 당신이 좋다,라는 말은 당신이 무슨 색인지 알고 싶다는 말이며 그 색깔을 나에게 조금이나마 나눠달라는 말이다. 그 색에 섞이겠다는 말이다. (29#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달라고)
당신도 나를 사랑했음 좋겠다. 당신이 나에게 기댔으면. 내가 당신을 얼마 전부터가 아닌 십 년 전부터 사랑했으면. 넘어져도 당신 앞이었음 좋겠다. 당신이 나에게,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달라고 졸랐으면 좋겠다. 그래도 꼭 성공하라는 말은 안 했음 좋겠다. 당신이 좋다,라고 하루에 스무 번씩 혼잣말하기. 당신이 좋아하는 고래를 보러 다시 함께 제주도에 가기. 서로를 떠났다 돌아오기. 나, 당신을 잊어도 당신을 사랑했음 좋겠다.....(35# 어쩌면 이토록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지)
꼭 만나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꼭 만나게 될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상황도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경우까지도... 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을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살아온 분량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그걸 탈탈 털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 듣건 듣지 못하건 무슨 말인지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다 털어놓을 한 사람. (36# 무조건)
시간을 따라 많은 것들이 흘러가고 변해도 결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오래도록 빛바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무언가를 처음 꿈꾸게 되고, 사랑을 처음 알게 됐던 날
그때를 떠올리면 내 안에 꽃이 피듯 차오르는 마음이 그렇다.
'사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사랑이 담긴 언어로 전해주고 싶었다. 어떤 말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어떤 농도로 전해야 할지. 짙음과 옅음의 어디쯤에 있는 마음을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전해주고 싶어서 애타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 이 책에서 만난 문장들은 모두 내 마음 같았다. 나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마음을 누군가 천천히 풀어서 말해주듯. 그렇게 책에 있는 문장들을 빌려 내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바랐던 날들이 있었다.
10년 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는데 어쩜 밑줄 그은 문장들이 하나같이 그대로인지.
내 마음은, 내 사랑은, 이제 너무 낡아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어 읽듯이 마음이 아릿했다.
맞아, 나도 그런 사랑이 있었지, 하며 그때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너를, 다시 떠올렸다.
사랑을 아프게 앓았던, 수줍고, 서툴고, 그래서 애틋하고 예뻤던 그때의 마음들을 다시 마주하며 생각했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게 너여서 좋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