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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날들 Aug 07. 2024

쓰게 될 것, 최진영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 

최진영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 여덟 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흩뿌려졌다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다시 모인다. 


전쟁을 겪으면서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총을 들고 사람을 구원하는 이야기, 유전자를 편집해서 아이를 낳는 시대를 살고 있는 소녀, 엄마가 되어서야 자신과 '엄마'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 이야기, 중년 여성의 결혼과 삶, 은퇴 이후의 인생  등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삶과 사랑, 일상에 대한 이야기의 조각들. 


각각의 주인공들마다 다른 삶을 이야기하는데도 모두 애정을 느끼게 되는 포인트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우리의 삶이 저마다 다른 듯 닮아있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게 되는 기쁨과 두려움, 슬픔과 행복이 어쩌면 한 끗 차이인 것처럼. 주인공들마다 삶을 마주하는 태도와 방식이 달랐지만, 삶에 있는 생채기와 구멍들을 서로 메워주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퍼즐조각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듯, 단편들이 '삶'이라는 하나의 소설처럼 이어졌고 삶을 애정하는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는 문장들이 좋았다. 


"쓰디쓴 삶이라도 이야기로 써서 고통 너머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마음을 쓰는 일에 나를 쓰는 것. 

그것이 나의 사랑이라고 아직 믿고 있어요. 

쓰게 될 것은 이미 쓴 것. 

그러므로 새롭게 쓰고 싶은 마음. 


계속 쓰겠습니다." (2024년 유월, 무한의 서에서, 최진영.)


이상하고 지루한 사람들에 대해, 가끔 꾸는 악몽과 죽은 사람들에 대해, 천박한 어른과 한밤의 산책과 가끔 엄습하는 자해 욕구와 없애버리고 싶은 기억과 박제해두고 싶은 기억을 조금씩 말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말했다. 매일 다른 날씨와 하늘, 구름, 햇살, 장마, 첫눈, 노을, 겨울철 별자리, 바람에 실려 오는 계절 향기, 그리고 마침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p.63)


지난밤에도 서진은 남편과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지난밤의 '사랑해'와 두 사람이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주고받았던 '사랑해'는 농도와 질감이 달랐다. 이전에는 사랑을 다이아몬드처럼 여겼다. 잃어버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했다. 이것이 진짜인지 종종 의심했다. 언제나 조금은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제 서진에게 사랑은 공기 같은 것. 고산지대에 오른 사람처럼 3,40퍼센트 이상 희박해져야만 위기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느끼는 미세한 부족함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었다.(p.80)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AI가 할 수 없는 일뿐이다. 이를테면 자연적인 출산과 성장, 노화와 죽음 같은 것. 소셜미디어 속 유아 채널의 인기는 날로 치솟았다. 로봇으로는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생명의 귀여움, 사랑스러움, 의외성, 활력, 신비에 굶주린 인간은 점점 늘었다.(p.167)


시간은 발산한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딘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p.262)


그 집에서 사십 대가 되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어진과 상의할 수 있다고, 곤란하고 힘든 일도 함께 겪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사고가 나면 수습하고, 싸우면 화해하고, 고장 나면 고치고, 잃어버리면 길을 찾고, 상대가 악몽에 갇혀 있을 때는 작은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 서로를 천천히 구원하는 일상. 나에게 미래란 내일이었다.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기도와 같은 기대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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