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이 즐거운 나이 (중장년을 멋지게 살아가는 법)

망설임 없이 멈칫거림 없이

by 전경일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만/, 먹으면 좋으련만 조수처럼 해마다 한꺼플 씩 밀려들어와 나의 발목과 허리를 채우곤 가슴에까지 와 닿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이며, 나이 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이듦의 진면목은 빛 바래는 것이 아니다. 어제보다 얼마든지 멋져질 수 있다.

중년 삶의 진실이 이것이다.

잘 입은 양복에 멋진 캠버스 운동화를 신은 신사의 모습에서 우리는 중년의 부러움을 느낀다. 잘 맞는 청바지와 쫄티를 입은(하지만 오버하지 않는), 힘 쓸 때마다 언듯언듯 복근이 보이는 중장년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섹시함은 젊음의 몫이 아니라, 누구든 공유할 수 있는 취향이다.


멋진 셔츠에 머플러를 하고 겨울철이면 중절모를 쓰거나, 여름철 아이들이 뛰어노는 야구장에서 선캡을 쓰고 목청껏 응원하는 중년을 보면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픈 욕구가 불끈 솟구친다. 유명 배우에 주눅들 필요도 없다. 조금만 가꾸면 얼마든지 멋진 면을 찾아 가꿀 수 있을 테니.


누구나 나이듦에 대한 로망이 있다. 거추장스럽고 추레하고 군내 나는 중년이 아니라, 멋지게 고고씽 하며 내달리는 젊은 친구들 못지않게 산뜻한 감각을 지닌 중년이 될 수 있다. 멋은 돈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 삶에 대한 훌륭한 태도와 품격어린 말투에서 배어난다.

중장년은 나이가 몇이냐기 보다는 정신상의 근력, 생활상의 탄력 같은 것으로 채워지고 평가돼야 한다.

새로움을 기준으로 나이듦을 바라보아야 한다. 어차피 죽도록 달리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주말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를 기울이거나, 아내와 부드럽게 블루스를 추는 중장년엔 멋진 인생의 멋이 깃든다.


나이 들수록 내면의 성찰을 이뤄내는 깊고 맛나는 중년이고 싶다. 인생의 굽이굽이를 헤쳐 왔으나, 앞으로 들려 줄 이야기는 무용담이 아니라 아름다운 시적(詩的) 풍경이기를 바란다. 인생에서 겪는 모든 것들은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케 하며 정신적으로 단련시켜 주는 과정이었음을 온 몸으로 증명해 내고 싶다. 섬세하고 잔잔한 강물처럼 의연히 미소를 머금고, “그래,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테지.” 여유롭게 손 내미는 그런 넉넉한 마음씀씀이의 중년이고 싶다.


우리는 생에 대해 부분적 진실만을 알아왔다. 삶을 현명하게 통찰하지도, 깊은 우물물을 들여다보듯 관심가지지도 못했다. 쉼 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강물 앞에서 머뭇거리기만 하거나, 삶의 낮은 철학으로 인생을 냇물 건너듯 해왔다. 활짝 날개죽지 편 청량한 봄가을 같은 날씨보다는 한여름 무더위같이 지루하거나, 한겨울에 추위맞듯 온몸을 움추리기나 해왔다. 영혼을 울리는 감동을 잊은 지는 오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지금부터라도 무엇으로 나를 더듬고 다듬어 가야 할까? 나이듦을 어떻게 헤아려 볼까? 무엇으로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까? 더는 후회스럽지 않은 날들로 생을 꾸며 볼 수는 없을까? 온갖 내면의 질문을 하게 된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와 정신적 만족에 있다 싶다. 남들이 만드는 경쟁에 뛰어들어 한시적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는 인생은 훨씬 흐뭇하다.

그간 너무 세게 당긴 탓에 영육을 얽어매왔던 끈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주고 싶다. 행복은 이럴 때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와인처럼 빛나는 중장년은 인생 어느 때보다 복되다. 지금껏 가져 온 어떤 인생보다 많이 가졌으며, 경험도 가장 많다. 일찍이 이보다 더 지혜로웠던 적이 있던가. 이 점만으로도 나는 알찬 나이로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며 이렇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가끔 나를 흔든 짧은 상념들, 하지만 긴 생각이기도 한 것들을 옮겨 보고 싶었다.

간혹 곱씹을 만한 이야기는 접어놓았다가 다시 펼쳐 보고 싶었다. 중장년에 맞고픈 인생을 알게 된 건 행운이다. 멋진 중년은 내가 지금 맞는 삶과 함께 어깨동무하며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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