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방식, 말하지 않아도 감당하는 마음
이전에도 말한 적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신규 간호사가 실수를 하더라도, 그게 큰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이상 바로 지적하지 않았다. 모르면 무조건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이건 이런 이유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나는 이런 식으로 해봤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런 대화를 통해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실수 자체를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
신규 시절, 대부분의 선배들은 실수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가르쳐주는 사람은 드물었고, 이유도 없이 무작정 혼내기만 했다. 교육을 받는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누군가의 기분에 따라 휘둘리는 장난감 같은 존재가 된 느낌이었다.
억울했던 순간도 많았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혼난 날, 퇴근하고 나서도 수 많은 연락을 받았던 날. 지금 돌아보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는 내가 받았던 방식대로 가르치지 않겠다고.
실수를 해도,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돌아보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게끔 도와주는 사람이 되자고.
그 시절에 내가 느꼈던 건 단순한 힘듦이나 감정 소모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무기력함이었다.
주도적으로 해보려 해도 그 나름대로 혼나는 이유가 되었고, 돌아오는 건 불신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점점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마음을 드러낼수록 더 혼이 났다.
도움이 되기보다는 튀는 아이처럼 여겨졌고, 시키는 일만 하게 되었다.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게 누군가에겐 불편한 일이 되었고, 내가 판단한 결정은 경솔하다는 평가로 돌아왔다.
언제 어느 방향으로 휘둘릴지 몰라 항상 조심해야 했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누가 말하느냐가 더 중요했던 곳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작은 실수 하나가 내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당연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나에게도 후배가 생겼다. 나는 고민했다.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후배가 나처럼 무기력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실수를 지적하지 않았다. 모르면 무조건 가르쳐야 한다는 태도도 갖지 않았다. 그보다는 “나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 “이런 방법도 있어” 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게 더 건설적인 방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내가 당한 만큼 후배에게 돌려주는 게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를 기억했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가 견뎠던 방식으로 견디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입을 꾹 다물었고, 실수를 덮어주기도 했고, 몰랐던 건 조용히 다시 정리하며 넘기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미지가 좋은 선배는 아니었다. 크게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정말 내가 궁금한 것만 딱 집어서 물었고, 어쩔 땐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그냥 넘긴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내가 그 친구를 알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내 방식이 상대방에게 위축감을 주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계를 주고받을 때, 더 긴장하고 조심했을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너무 조용히 떠보진 않았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앞 사람이 일을 빠뜨리고 가도 중요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 시간에 말하는 것보다 그냥 내가 처리하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대부분의 실수는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아야만 깨닫는 건 아니라고 믿었다.
그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아, 그때 그건 내가 놓쳤었지’ 하고 알아채게 되는 순간이 온다. 대부분은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 그 상황에 너무 바쁘고 복잡해서, 정신이 없어서 실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걸 떠넘겼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 한 마디에 어떤 마음은 쉽게 상처입는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일을 놓쳤다면, 그 안에는 말 못 할 피로와 상황이 있었을지 모른다. 실수는 누구든 한다. 누구든 빠뜨릴 수 있다. 그걸 지적받지 않았다고 해서 완벽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지적받지 않으면 잘한다고 착각하는 태도야말로 진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태도는 언젠가 주변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
나는 실수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대하는 자기 인식과 태도, 그게 사람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았다. 때로는 조용히 감당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면 내가 조금 더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감당하는 방식이 누군가에게 ‘나도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물론, 이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혼란스럽고, 어떤 게 맞는 방식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나는 한때 어떤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가 말 없이 견디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그렇기에 오늘도 조용히 감당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 방식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 조용함이 진심으로 전해질 수도 있다고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