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인 이기심과 무언의 폭력, 말 많은 사람이 이긴다고? 그게 문제다.
나는 일하면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말하는 대신, 그 시간에 일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말하면 괜히 남들 입에 오르내릴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의견을 물어봐도 “상관없어요”라고 말하며 침묵했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했다.
누구도 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에, 그저 그런 괜찮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거리를 두고 있다고, 심지어 자신들을 싫어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슷했다. 내가 싫어했던 건 그들이 아니었다. 도와주고 싶어하는 척 하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만 챙기는 이타적인 듯한 이기심이었다.
이타적인 이기심이라고 표현했지만, 어찌 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나 역시 친한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고, 호의적인 사람에게 더 잘해주고 싶어진다.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그들이 보이는 그 자연스러움이 어느 순간부터 말하지 않고 표현하는 방식의 태움이 되고, 방관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부러 차가운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아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방식으로 누군가는 조직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그 무언의 폭력은 늘 말 없는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 안에서 굳이 어울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사실 무언의 폭력은 꼭 말 없는 사람에게 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압박을 주고 괴롭혀도 그 사람이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위치에 있을 때, 그들은 그걸 기회처럼 이용했다.
사소한 실수를 마치 큰 결례라도 된 것처럼 포장하고, 그 사람을 예의 없거나 존중을 모르는 사람처럼 만들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도와주는 척하지만, 실은 약한 사람을 조용히 밀어내는 방식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심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저 사람은 어쩌면 가정 교육부터 잘못 받았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오래된 문제라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런 일을 당했던 건, 사실 내 동기와 바로 밑의 후배들이었다. 물론, 가해자는 같은 동기와 바로 위 연차 선생님들이었다.
동기가 동기를 마음에 들지 않아한다는 게 웃기기도 했지만, 동기라고 해서 모두가 친하고 성향이 맞는 건 아니기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그 불편함을 이유로 자기들끼리 뭉쳐서 누군가를 밀어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피해는 나에게 직접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들과 특별하게 친하지는 않았기에, 나 역시 거리를 둔 채 조용히 그 바깥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가끔 그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일부러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래서인지 “보살인 척하지 말아라”, “너도 짜증낼 땐 잘만 내면서 왜 특별한 척하냐”는 식의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냥 다들 하는 말에 덜 동조했을 뿐인데, 그게 어떤 이들에게는 유난으로 보였던 거다.
나는 그 약자들에게 더 잘해줘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게 행동할 만한 위인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이미 그 사람들이 너무 지쳐보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지적하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것 같았고, 피폐한 모습 앞에서 선뜻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나는 그저 같은 방식으로 대하려고 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그들 곁을 조용히 지나가는 식으로.
물론, 그런 내 태도가 오히려 더 눈에 거슬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도 싫어해주길 원하고, 그 박해받는 사람이 더 외롭고 더 괴로워지기를 바라니까.
결국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밀어내고, 내가 편한 사람들하고만 손발을 맞추고 싶어하는 마음. 나는 그런 마음이 정말 싫었다.
내가 대단한 용기를 가진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고르지는 않았으니까.
나도 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마음속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한 날도 있다. 그래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이 대하기 편한 사람들과 일하고 싶어한다. 마음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것조차도 일종의 이기심이라고 느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다른 부서로 보내거나 조직에서 내보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이 떠난 자리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는가.
결국, 눈앞에서 불편한 사람이 사라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사람을 밀어내는 방식 자체에 있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잘 뭉치는 건 조직에 이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뭉침이 배제를 전제로 한다면, 반드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말 많은 사람이 결국엔 이긴다고 하지만, 문제도 결국 그 말 많은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말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의 편에 서 있지는 않았지만, 또한 그들을 무너뜨리는 편에도 서지 않았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나 자신을 지키며 버티고 있다.
그렇다면, 말하지 않는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내가 선택한 침묵은 정말 무기력일 뿐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다른 방식의 저항일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그 고민에서 나만의 길을 찾으려 돌아다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