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2시 26분

by 에포트리슬리

12차 입원


언니가 내일과 모레 중요한 일이 있어, 다시 간병은 내 차지다. 퇴근하자마자 씻고,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주섬주섬 챙겨 병원으로 향한다. 지난번 교대때와 비교해 얼굴은 한결 편해졌고, 신음 소리는 옅어졌다. 항암 독성이 많이 해소됐나? 항암제가 반응을 하나? 꾹꾹 눌러두었던 소망이 다시 머리를 든다.


어제 5.4km를 뛴 데다가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했다. 피곤한 육신 탓에 만사가 귀찮아 잠을 청한다. 아빠의 고통스럽고 반복되는 신음이 내 귀를 때린다. 익숙하지만 결코 편안해질 수 없는 소리다.


한참 잔 것 같다. 아빠의 발작적인 기침소리에 잠이 깬다. 기저귀를 갈 때가 얼추 된 것 같다. 자는 아빠를 깨우기 싫고 졸린 나를 깨우기는 더 싫어 타이밍을 엿본다. 잦아든 기침에 다시 잠을 청하다가 다시 시작된 기침에 몸을 일으킨다.


아빠에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고, 기저귀를 간 후, 가습기에 물을 채우고 다시 간이 베드에 눕는다. 새벽에 잠을 깰 때면, 아니 깰 것을 강요당하는 순간에는 보통 짜증이 난다. 내게 언제 이런 악한 모습이 있었지 싶을 정도로 악담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슬프다. 가래와 기침에 시달리는 아빠도 불쌍하고 그런 아빠를 어떻게든 붙들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도 불쌍하다.


퇴근길에 들은 슬픈 음악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연락이 된 인도네시아 친구 때문일까?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이 친구는 연말에 놀러 오겠다 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비자대행을 의뢰해야 해서 늦어졌다면 3, 4월쯤으로 계획을 잡고 있다 한다. 잘 지내느냐길래 거짓말로 괜찮은 척할 수 없어 아빠가 한 달 넘게 병원에 있다고 전했다. 아빠는 일생일대의 가장 힘든 싸움을 하고 있노라고 고도 전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나의 고통에는 별 관심이 없다. 가까운 친구들 중 그나마 부친의 투병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빠가 특히 많이 아파서일까? 그들은 내가 겪고 있는 아픔을 모르고, 듣고도 잊고, 또 관심이 없다.


오래 교류하며 호의를 받고 주로 베푼 친구들에게는 유독 서운함이 몰려온다. 너도 같은 일 겪을 때 나도 똑같이 해주마. 극강의 옹졸함이 치받고 온다.


여하튼 인도네시아 친구의 위로에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써내려 갈 때마다 눈물이 솟았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줄에 서서 연신 콧물을 훌쩍이고 눈물을 닦아낸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콧물을 가려주고, 머리까지 둘러쓴 털이 보송보송한 패딩 모자가 눈물을 가려준다.


혼자만의 통곡은 셔틀버스에 몸을 싣으니 곧 그쳤고, 셔틀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1시간 정도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졌다.


나는 오늘 소심한 복수를 할 것이다. 내 고통에 무심한 친구들 카카오톡 단체창에서 몰래 나가기를 시전해 줄 것이다. 쳇!!! 나중에 물으면 “어, 정말. 내가 없어?” 하며 검증할 방법 없는 거짓말을 시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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