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일간의 입원
병원비 12,087,970원
수많은 투약과 검사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당초 설 전에도 주치의는 퇴원이 가능하다 했다. 퇴원은 퇴원이지만 상급병원에서 방출되는 것이고 엄밀히 말하면 요양병원으로의 전원이다. 어차피 상급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가 얼추 끝나고, 온갖 감염의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지고 있는 상급 병원을 떠나 - 이곳에 있는 동안 몇 번 더 원인 모를 열이 올랐다 잡히기를 반복했으니 맞기도 하다- 조금은 재활을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해 요양병원으로 전원 하기로 했다. 병원비나 개별 간병인 비용이 더 싸기도 한 것도 이유였다.
당초 설 전에 퇴원을 희망했으나 명절 전에 상태가 조금은 어려워 보이는 새 환자를 맞기가 불편한 요양병원 측의 거부로 명절 직후인 내일이 D-Day가 되었다. 그 사이 염려했던대로 가벼운 감기에 걸려 열이 났다. 이제 열 정도는 대수롭지도 않다. 72일의 절반을 해열제 투여로 보냈으니 예전만큼 쫄지 않았고, 염증수치도 많이 오르지는 않고, 검사상 특별한 감염도 발견되지 않아 퇴원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고장 난 수도꼭지는 퇴원 전 날부터 위력을 발휘했다. 잠들기 전 끝없이 나오는 울음에 누가 들을세라 숨을 죽여 울었다. 한참을 펑펑 울다 막힌 코를 부여잡고 잠에 든다.
주치의 회진에 맞춰 일찍 병원으로 향한다. 지나치게 일찍 도착해 병실에 들어가니 간병인 여사님이 곤히 주무신다. 조용히 빠져나와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며, 옆의 어르신 환자분 채널도 찾아 돌려 드리고 서성거리기도 하며 어슬렁대다가 아침 식사 배식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병실로 다시 향한다.
주치의가 와서 땅땅 퇴원을 윤허해 주고, 나는 주치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꼴 보기 싫었던 경험만 떠올리며 “고생하셨습니다” 하며 인사를 전한다. 그 말이 꼭 다시 안 오겠다는 말 같아 “또 뵙겠습니다”는 인사를 덧붙인다. 고장 난 수도꼭지 이번엔 잘 잠갔다. 자존심이 있지 주치의 앞에서 두 번은 울지 않겠다. 2차 항암을 결정하며, 중간에 위기가 와 중환자실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운 적이 있다. 두 번은 안된다!!!
이제 약이 나오고 퇴원 정산이 끝나 수납만 하면 되지만 기약은 없다. 여기서는 다 마무리돼야 되나 보다 하는 것이다. 중간중간 간병인 여사님의 간병비 정산도 해드리고, 아빠 기저귀도 갈아드리고, 짐 정리도 하며 수도꼭지를 잠그려고 애써보지만 달리 고장인가. 손을 씻다가도 눈물이 나고, 아빠와 얘기를 하다가도 눈물이 나고, 뭘 해도 눈물이 나 벌게진 눈을 감추고 다니느라 애를 쓴다.
보통 상급병원에서는 11시면 방출이 되는데 11시가 훌쩍 넘도록 약이 도착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간호사 스테이션에 채근을 한다. 12시가 넘으니 앰뷸런스는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병원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맞고 있던 주사를 황급히 빼고 약을 받고, 모든 준비를 끝냈지만 수납할 준비가 됐다는 문자는 오지 않는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환자를 먼저 출발시키고 나는 남아 수납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오랜만에 환자복이 아닌 자신의 일상복을 입은 늙고 아픈 아빠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분주함에 나를 가두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킨다. 아빠가 베드에 누워 병실을 빠져나오는데, 여사님이 눈이 빨개져서 펑펑 울고 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아, 위험했다. 같이 펑펑 울 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앰뷸런스에 아빠를 태운다. 동승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혼자 보내기로 결정했던 터라 아빠와 인사를 한다. 이미 예상했던 바지만 여기서부터는 어쩔 수 없다. 이미 아이처럼 엉엉 우는 나를 응급구조사가 안쓰러운 듯 쳐다본다.
앰뷸런스가 떠나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웬걸 이 차가 계속 서 있다. 혹시 아빠가 이상한가 싶어 전화를 해 보니 벌써 자기 차는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있단다. 우느라 정신이 팔렸는지, 눈물에 가려졌는지, 미처 차가 나가는 것조차 놓친 모양이다.
나 혼자 남아 배터리가 16%밖에 남지 않은 휴대폰을 보조배터리로 심폐 소생해 본다. 마감이 벗겨진 연결선 대신 새 연결선을 가져왔는데 이게 고속충전선이 아닌지 1% 충전하는데 20분은 족히 걸리는 듯하다. 휴대폰 놀이를 할 수 없으니 기다리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벌게진 눈으로 간간히 솟구치는 울음을 억누르다 수납 문자가 오니 용수철처럼 튀어 수납 번호표를 누르고 최종 수납을 한다.
동승을 안 하니 대신 집에 와 편히 쉴 시간이 생겼지만 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다. 잠시 낮잠을 청하는 중에도 도착 한 시간 전을 알리는 응급차의 전화, 그걸 다시 요양병원에 전달하느라 오래 자지는 못한다.
3시간 10분여 만에 드디어 아빠가 도착했다고 기다리고 있던 동생이 알려준다. 원장과 간호사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 동승하니만 못한 휴식을 보내고 저녁이 되었다. 저녁이 되자 온갖 복잡한 감정에 낯선 환경에 개인 전담 간병인이 없는 새로운 환경이 어색하고도 불편할 부친이 불쌍해 눈물을 쏟는다.
나는 졌다.
원래부터 이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부친이 죽자고 나한테 싸움을 건 것도 아니지마는, 나는 혼자 대상 없는 싸움을 싸우고 있었다. 누가 더 사랑하고 애달픈지 싸움이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간병이 너무 힘들고 버거운 날들에는 어쩌면 그날이 온다면 후련하리라 생각한 적도 있다. 너무도 당당하게 나는 이걸 더 해줄걸, 저걸 더 해줄걸 하는 후회가 없을 거라고 잘라 말하곤 했다.
하지만 72일의 대장정을 끝낸 지금, 그중 2/5 정도의 기간은 병원에 종일 함께 머무른 그날들에서 나는 부친에게 친절하지 못하거나 모질었던 순간들만 골라내어 그 시간을 뼈져르게 후회한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도 똑같을 것을 알지만, 나는 부친의 그 시들어가는 시간을 붙들기 위해 내게 남은 시간이라도 흔쾌히 내놓을 수 있다.
이제 잘해야 1주일, 2주일에 한 번쯤이나 부친의 얼굴을 볼 테지만, 매일 부친의 이마를 짚어보며 얼굴을 만져줄 수 있던 그 시간들이 못내 그립고 뼈에 사무치도록 아쉽다. 그래서 나는 이 밤에도 꺼이꺼이 아이처럼 울고 있다. 다른 가족들이 들을까 애써 소리를 죽여 울면서 나는 부친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졌다.
내리사랑이라 했나? 하지만 오름사랑도 못지않다. 남은 날이 나보다는 훨씬 짧은 부친의 애달파하는 마음도 심장을 도려내듯 아프다. 그래서 나는 졌다.
나의 뇌가 정확히 내 몸에 지령을 보내고 있다. 이제 아파도 좋다고. 춥고, 건조하며, 온갖 병균이 창궐하던 병원에서 잘 때도 괜찮았었는데 슬슬 한기가 들고 목이 따끔하고 코도 시큰거린다. 이제 간병은 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파도 좋다고 사인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