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희극은 한 끗 차이

by 에포트리슬리

아빠는 귀가 어둡다. 어려서 물놀이를 하다 중이염을 심하게 앓은 데다 성인이 돼서도 한 번 더 앓은 적이 있어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보청기는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 예민본좌인 부친이, 뭐 하나만 신경 쓰이는 게 있어도 주야장천 그 얘기만 하는 통에 보청기는 적응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미리 포기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어두워진 귀는 항암 이후에 거의 안 들리는 상태가 되어 귀에 가까이 대고 말하지 않으면 거의 듣지 못한다. 그런 상태임에도 본인 유리한 말은 잘 듣는 걸 보면 희한하다. 선택적 난청인가? 그러다 보니 전화 통화는 시도도 못한다. 서로 엉뚱한 얘기만 하나 끓는다. 거리가 있을 때는 손가락, 몸짓 등 제스처로 보완한다.


한 번은 간호사 스테이션에 옷 갈아입게 주사 바늘을 빼 달라고 아빠와 같이 간 적이 있다. 간호사 선생님이 병실에 가 계세요 하니, 거기서 바로 주섬 주섬 웃옷을 벗는다. 한참 웃었다.


12차 입원 때는 입원이 길어지니 가벼운 섬망이 나타났다. 평생 교회라고는 내가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 한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여기 교회냐? 교회 숙소냐? 묻는다. 어떤 때는 “왜 나를 정신병원에 데려다 놨냐?”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 며칠 전에는 환자용 산소 발생기의 뾰쪽한 부분을 보며 “칼 치우라”라고 하면서 계속 Nasal Prong이라고 하는 산소줄을 떼려고 한다.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얼토당토않은 소리라 헛웃음이 터진다.


한 번은 새벽 2시에 누가 나를 톡톡 두드려 깨워 일어나니 간호사였다. 아버님 어디 가셨냐고 물어 황급히 베드를 확인하니 아빠가 없다. 황급히 병실 내 화장실을 확인해 보니 화장실은 비어 있다. 간호사가 바깥 화장실에 가신 것 같다해 서둘러 나가 보니 그 새벽에 익숙한 실루엣이 거기 앉아 계신다. 병실 화장실이 비었는데 왜 거기를 가셨을꼬.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안심을 하고, 텁텁한 입맛이 싫어 칫솔을 물고 온 사이, 화장실이 비어 있다. 다시 혼비백산해 찾으니 그 사이 옆 병실에 들어가 헤매는 것을 간호사가 모시고 온다. 아빠는 어린애처럼 눈망울을 굴리며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귀엽고 우스워 실소가 터진다.


섬망 환자를 본 적이 있다. 항암 후 골수이식을 한 앞 베드 환자였는데 멀쩡하게 대화하던 사람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베드에서 자꾸 내려오려고 하고 링거줄을 떼내고 하는 바람에 간호사가 30분마다 달려와야 했다. 보호자도 동반하지 않았고, 보호자에 연락해 간병인을 섭외했지만 바로 올 수는 없었다. 결국 어찌하다 피가 낭자해지고, 하루 종일 병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초긴장 상태로 지켜보다 수십 번 간호사를 부르고 하는 상황이 반복된 후에야 중환자실로 강제 이송했다.


섬망이 심한 상황은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비극이다. 아빠는 그나마 가벼운 섬망이었고, 금세 제정신으로 돌아왔기에 웃을 수도 있다. 비극과 코미디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두 달이 넘는 12차 입원 중 퇴근 후에 아빠를 보러 가던 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산소포화도가 낮아 병동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했으나 호전되지 않을 경우 ICU로 옮겨 기관 삽관을 해야 할 수도 있단다. 연명치료거부서에 이미 서명을 했기 때문에 임종상황일 경우 기관 삽관은 하지 않게 될 터였다. 이제 이게 마지막인가 하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병원을 향하는 택시에서 남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단체창에 내용을 공유했기에 더 자세한 얘기가 듣고 싶어 한 전화였다. 꺼이꺼이 울고 있는 나에게 “울지 말라”던 동생은 갑자기 본인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 말도 없이 흐느끼는 소리만 들리는 것이 남 맜지 않게 울고 있는 판이다. 순간 나는 웃음보가 터졌다. “나보고 울지 말라더니 지가 더 울고 있네”하며 나는 껄껄댔다.


우리 막내로 말하자면 내가 미국 유학을 간 중에 굳이 당시에는 비쌌던 국제전화를 걸어 울면서 “재롱이 (당시 키우던 슈나우저 강아지)가 죽을 것 같아. 기도해 줘!”하며 목놓아 울었던 전력이 있다. 재롱이를 품에 끼고 살던 동생이라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웃지는 못했지만, 두고두고 그때를 생각하면 실소가 터진다. 다 큰 남자애가 강아지가 죽었다고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양이라니. 아가일 때 쓰레기통을 뒤져 화장지를 맛나게 먹은 후 호흡이 멎었던 재롱이는 다행히 동물 병원에서 CPR로 살려내어 (당시에 거금 30만 원이 병원비로 소요되었다) 그 후로 10년을 더 살다가 갔다.


부친은 원래도 마른 체형인 데다 최근에 살이 너무 빠져 32kg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팔뚝이 가늘어지다 보니 병원에서 환자 인적 사항 확인을 위해 패용하고 있는 인적사항 확인 밴드 (놀이동산에 가면 주는 그것과 비슷하다)가 어떤 때는 저기 팔 위까지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간호사들이 주사 전 이름 확인을 할 때 못 찾고 헤매는 경우가 잦았다. 첫 번째 간병인의 만행으로 바닥에 넘어진 이후로 밴드에는 빨간색 “낙상주의”라는 빨간딱지를 붙이게 되었다.


명절 전 간병인 여사님이 자리를 비운 동안 내가 대타를 뛰게 되었다. 그런데 이 스티커가 교묘하게 일부가 뜯겨 나가 “상주의”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가뜩이나 심부전, 호흡부전, 위기를 두 번이나 넘긴 부친인데 스티커가 너무 기분 나빠 간호사 선생님께 새 걸로 교체해 주십사 부탁드렸다. 스티커가 묘하게 불쾌하다고 ㅋㅋ. 둘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한 글자 차이에 괜히 징크스라도 될까 조심한다. 이 상황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난다.

매거진의 이전글47만 원, 앰뷸런스 라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