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입원 (2025년 8월)
금요일 퇴근 후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가 교대한 후 꼬박 48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집에 걸어 돌아오는 중.
입맛 없는 부친을 위해 뭐라도 먹여보려고 본인이 선택한 만둣국과, 평소 좋아하시는 냉면을 모두 시켰다. 남을 것을 알지만, 혹시 입맛이 돌아올까 싶은 마음에 낭비를 감행한다.
본인 병원비로 수백, 수천만 원씩 지출하는데 정작 오천원인 커피값 (이 양반은 세련되게 커피숍 마키아토를 좋아한다. 맛있는 커피숍은 또 귀신같이 안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에도 마키아토는 나불나불, 홀짝홀짝 잘 드신다), 만원을 살짝 넘기는 음식값을 걱정하는 심리는 도대체 뭘까? 식사 때마다 늘어놓는 “남으면 아깝다” 타령이 듣기 싫어, 본인은 정작 손도 대지 않은 냉면과 남은 만둣국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온종일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세끼 모두를 과식한 탓에 음식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소화시킬 겸 우울한 기분도 해소할 겸 집까지 한 시간 반 남짓한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출근을 핑계로 당분간 며칠은 병원 생활에서 해방됐지만, 그 해방감도 잠시 짜증이 몰려온다. 주말 이틀이 순식간에 사라진 허무함에, 하루 종일 무료한 휴대폰 놀이에 지쳐 머리가 멍하다. 회의가 몰려온다. 비교적 가까운 타인의 인생을 연장하기 위해, 정작 나는 쉬지도 못하고 다시 생업으로 투입된다. 오히려 출근이 휴가처럼 느껴진다.
작년에 노후 계획을 위한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그다지 많이 쉬어본 적이 없다. 1년에 총 2주 정도의 예외를 제외하면 (아프거나, 아주 드물게 숙취에 절거나, 아니면 삐뚤어지고 싶거나, 다른 더 긴급한 일이 있을 때), 매일 정해진 새벽 시간에 일어나 공부하고 출근하거나, 휴일에는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공부하지 않을 때는 일을 하고, 일하지 않을 때는 공부한다. 시험이 가까웠을 때는 퇴근 후에도 다섯 시간씩 책에 코를 박고 있느라 눈이 시큰거리고, 식도염과 허리 디스크 때문에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너무 오래 살까 봐, 그 오래 사는 동안 할 일과 수입원이 없을까 봐 나는 이토록 노력한다. 출장 가는 비행기 이동 중에도 시간을 쪼개가며 라운지 내에서, 기내에서도 책을 보면서 더 이상 주입을 거부하는 멍한 머리에 지식을 쪼개 넣는다.
이렇듯 처절하고 치열하게 사는 나의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정작 온종일이 무위로 가득한 타인보다 가까운 누군가의 삶을 처절하게 지탱하며 산다. 앞으로 살날도 내가 더 많고, 그렇기에 나를 더 챙겨야 하지만 나는 그럴 여지도 여력도 없다. 나의 치열한 시간을 갈아 당신의 무료하고 병든 일상을 확보한다.
취업하고 경제적으로 사람 구실을 한 세월을 어림잡아 20년으로 보자. 그동안 집도 사드렸고, 매달 생활비며 잡다한 크고 작은 지출을 보전해 드렸으니 매정하게 말하자면 나를 키워준 노력과 애정에 대한 정산은 얼추 끝난 것 같다. 정산이 끝났다 한들 지원을 끊겠나 만은, 그런데도 자식이라는 신분범인 나에 대한 물질적, 육체적, 시간적 요구는 끊임이 없다.
공평하지 않다. 당신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내 인생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억만금을 주고라도 당신의 시간을 사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나 긴병에 효자 없다던가, 시간이 가면서 나는 잔인하고, 못되게도 본전 생각이 난다.
내가 물질적 여유가 있다면 다를까 가끔 생각해 본다. 그런데 주변의 얘기는 오히려 그 반대라 한다. 내가 잘 아는 지인이 유럽에서 효능이 탁월한 건강식품을 판다. 가격도 제품 하나당 수십만 원대라 제대로 조합해 먹자면 한 달에 백만 원은 너끈하다. 그분 말씀이 부촌에 사는 여유 있는 부자들이 이 보조식품을 먹고 부모님 건강이 호전되면 싫어한다고 한다. 유산받을 시기가 늦어져서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사실 너무 놀랐다. 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어떻게든 겸손한 매달의 수입에서 백만 원을 떼 시들어 가는 육신에 생기를 더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는 빈궁한 생활을 선택할 수 있는데. 또 그렇게 하고 있는데. 부모가 부유하면 나도 같은 잔인한 마음이 들려나? 검증해 볼 방법이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아마도 자녀는 부자이고, 부모가 가난한 조합이 어찌 보면 최상인 듯 싶다.
여하튼 나는 오늘도 나의 시간을 갈아 넣어 당신의 시간을 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