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너무 허용적인 건 아닐까.
이 아이의 의존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분리하고 독립해야 할 순간 앞에서
내가 그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학생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나는 이 질문을
마음 한편에 조용히 떠올린다.
나는 가능하면
학생들의 말을 끊지 않는다.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아도,
논리가 매끄럽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아”, "그랬구나"라는 표정으로
조금 더 머문다.
그러는 사이
상담자로서의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는 때가 있다.
혹시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닐까.
또는
‘괜찮은 어른’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어느새
나를 이 자리에
조금 더 머물게 하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이
상담자의 자기애적 욕구를 건드린다.
나에게
상담자의 자기애적 욕구란
도움이 되고 싶고,
유능한 사람으로 경험되고 싶고,
자신의 개입이 의미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고,
의미 있는 존재로 남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을 말한다.
상담자 역시
관계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기에
이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없어야 할 이유로만 볼 필요도 없다.
다만,
문제는
이 욕구의 존재가 아닌
그 욕구가
상담자 내면에서
얼마나 '자각되고 다뤄지고 있는가'이다.
자각되지 않은 자기애적 욕구는
때로는 과도한 허용으로,
때로는 조급한 개입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 이면에는
상담자의 불안과 의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기보다
내 불안을 먼저 진정시키려는 방향으로
상담을 이끌어 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불안과 의심을
없애려 하기보다
질문으로 남겨두려 한다.
지금 이 순간의 머무름은
이 아이를 존중하는 선택인가,
아니면
내가 필요가 되고 싶은 마음을
조절하기 위한 선택인가.
이 질문을 품고 있는 한,
상담자의 자기애적 욕구는
더 이상 위험 요소가 아니라
방향을 점검하는 감각이 된다.
그렇기에
이 태도를
고수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상담실에 오는 많은 학생들은
‘존재로서의 수용’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자라왔다.
말이 조리 있어야 했고,
성과가 있어야 했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비로소 관계 안에
머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이제는 혼자 해내야 해”라는 말은
성장을 돕는 격려보다
또 하나의
조용한 철수 명령처럼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머무는 쪽을 선택한다.
의존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 설 수 있을 만큼
안전해지는 경험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담자의 자기애적 욕구는
제거해야 할 결함이라기 보다
돌봄과 경계 사이에서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확인하게 만드는
내적 나침반에 가깝다.
그 나침반이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머무를지, 물러날지를
조심스럽게 가늠한다.
우리가 붙잡고 있던 머무름 또한
누군가의 성장을 방해하려는 선택이 아니라
안전을 먼저 지키기 위해 선택된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조급함은 조금 물러납니다.
– 모퉁이심리상담센터
이 글은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인공지능 도구와의 대화를 참고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