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는 살인이나 약탈 보다는 고담시를 오로지 혼돈 무질서 상태에 빠뜨리는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의 일환으로 조커는 사회적 실험을 한다. 그는 영웅이라는 배트맨의 가면을 벗겨 타락한 모습을 폭로하거나 시민들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게임을 하는 것이다. 지인 또는 다수의 시민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 배트맨등 사람들은 이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조커가 제시한 3가지 사회실험을 알아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알아 본다.
고든 경감(게리 올드만)에 의해 체포된 조커(히스 레저), 아니 홍콩 기업 거물인 라우라는 돈세탁 업자를 구출해 내기 위해 조커는 위장 체포된다. 지문이나 DNA 치아 기록이나 이름 가명도 없어 이를 알아내기 위해 그를 심문하지만 조커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이에 고든은 배트맨의 협력을 구하고 배트맨은 조커를 폭행하는 등 강압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조커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고든의 부하인 부패한 경찰관을 이용하여 하비덴트(에런 엑하트) 검사와 그의 애인 레이첼(메기 질렌할) 납치하고는 배트맨에 게임을 제안한다.
조커가 배트맨에게 제안한다.
“두사람중 한 사람만 살릴 수있다. 남자(하비덴트 검사)는 52XXXX 창고에 있고 여자(레이첼)은 시세로 XXX의 창고에 감금되어 있다”
배트맨은 과연 누구를 살려야 하는가? 아니 누구를 살리러 갈 것인가?
레이첼은 과거 애인이자 지금도 절친이다. 하비덴트는 배트맨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고담시의 떠오르는 영웅이다. 그는 범죄자와 타협을 거부하고 고담시 마피아의 거의 절반을 구속시키는 활약으로 시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배트맨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고 그를 위해 후원회를 열어줄 정도로 물심양면 지원하였다. 즉 한마디로 하비덴트는 정의의 수호자로서 고담시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인 것이다.
이 경우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배트맨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선 이에 대해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살펴 보기로 한다.
칸트는 결과는 우리 의지의 역량 바깥에 놓여 있는 것으로 너무나 많은 변수와 우연에 의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도덕성의 척도가 될 수 없다. 도덕적 선․악의 판단은 오직 행위자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 즉 행위자의 의지와 관련해서만 내려질 수 있다다. 즉 선의지만이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가족의 평화를 위하여, 나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내가 아는 지인이 관련되어 있기에,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등등, 어떤 조건과 이유 목적이 결부된 행위는 선을 실현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조건적 정언명령, 즉 오로지 이 일이 옳기때문에, 그 어느 상황에서도(가난할때도 아플때도 바쁠때도, 더울 때도), 그 어떤 장소에서도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옳기 때문에, 하는 행동만이 옳고 바른 행위로 판단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벤담과 밀에 의하면 주어진 상황에서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은 가장 많은 행복을 산출하는 것이고 적어도 다수에 대한 최소한의 불행 산출이다. 칸트와는 반대로 행위는 오직 결과에 의해서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결과 평가의 유일한 기준은 행위에 의해 생겨날 행복과 불행의 양이다. 행복, 불행의 양 계산 시 어떤 사람의 행복도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계산되어서는 안 된다.
실존의 상황은 모든 개인이 처한 조건과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 보편적 도덕률을 부인한다. 즉 인간의 보편적 특성 보다는 개인적 특성에 관심을 두고 인간 삶의 주관적 의미를 강조한다. 따라서 실존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이 누구나 삶의 목적과 태도 자신의 생활양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진정한 삶의 방식은 각 개인들 스스로에 의해 선택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상황에 비추어 최대한의 정성으로 양심의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선한 행동으로 판단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자연상태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보는 홉스는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생존 본능의 이기적 존재로 본다. 따라서 항상 자기 이익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심리적 이기주의론을 주장한다.
퍼스, 제임스 듀우이등은 어떤 지식이나 행위등의 선, 악, 옳고, 그름은 그 지식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즉 실제 생활에 유용하면 그것은 진리이자 선이요, 실제 생활에 아무 효용이 없으면 그것은 쓸모없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영화속 배트맨은 정의의 화신 하비덴트를 버리고 자신의 절친 레이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이러한 배트맨의 행위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에 의하면 선한 행위로 간주되지 않는다. 과거 자신의 연인이자 현재도 사랑하고 있는 여인을 구하는 행위는 칸트의 보편적 의무이행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이 행위는 시공을 초월해서 행위해도 보편타당하게 옳기 때문에 수행해야 선한 행동으로 판단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개인적 이해관계를 앞세운 배트맨의 행위는 개인의 욕망내지 욕심이 드러난 행위이지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배트맨이 하비덴트를 구하러 갔다면 그것은 선한 행위로 판단 받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배트맨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하비덴트는 정의로운 검사이고 고담시민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기 때문에 구하러 갔다면 그것 역시 어떤 목적이나 욕망이 결부된 행위이기에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에 의하면 이는 도덕적 행위로 판단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역시 배트맨의 욕망이나 목적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배트맨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신념하에 하비덴트를 구했다면, 즉 어떤 조건, 목적과 결부됨이 없이 이 행위가 시공을 초월하여도 절대 옳기 때문에 하비덴트를 구했다면 그때는 도덕적이고 선한 행동으로 판단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양적 공리주의에 의하면 두 사람의 목숨 가치는 동등하다고 판단하기에 어느 한 사람을 구한 행위에 대해 도덕적 당 부당의 판단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질적 공리주의에 의하면 아무래도 하비덴트가 고담시의 영웅이고 많은 시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에 그를 구하는 것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적 공리주의에 의하면 배트맨이 레이첼을 구조하러 간 행위는 개인의 욕망에 의한 행위로 비도덕적이라는 비난받을 것이다.
실존주의는 도덕 판단도 개인이 처한 상황을 중시하므로 배트맨이 그 당시 상황비추어 양심적 판단을 내리고 레이첼을 구하러 갔다면 그것은 도덕적 행위로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당시 상황에서 배트맨이 최대한의 양심적 판단으로 레이첼을 구하러 갔다면 그것은 선한 행위로 판단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레이첼의 위치를 알아내자 마자 배트맨은 허겁지겁 달려 나간 것으로 보이므로 양심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본능적 반사적으로 달려 간 것으로 평가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배트맨의 행위는 최선의 양심적 결단을 하지 못한 비도덕적인 행위로 간주될 것이다.
반대로 하비덴트를 구하러 갔더라도 배트맨의 양심에 비추어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면 도덕적행위로 판단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양심적 판단이란 기준이 애매모호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실존주의는 모든 행위가 선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아주 주관적 이론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적 본질을 긍정하는 이 학설에 의하면 배트맨이 레이첼을 구하러 간 행위는 자연스럽고 도덕적인 행위로 판단 될 것이다.
만약 배트맨이 하비덴트를 구하러 갔다면 그것은 고담시를 위한 이타적인 행위로 보아 인간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로 판단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우리의 정의 관념과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실용성이 인정되면 선한 행동으로 인정되므로 레이첼을 구한 행위는 당연히 선한 행위로 평가받을 것이다. 사람을 구했는데 실용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실용성의 크기를 따지지 않기에 배트맨의 행위는 도덕적 행위로 평가 받을 것이다. 또 만약 배트맨이 하비 덴트를 구하러 갔다 해도 고담시를 위해 그 실용성을 인정 될 것이 분명하다. 이 학설을 이 사안에 적용하기는 다소 애매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조커의 이번 사회실험에서 실존주의, 이기주의, 실용주의는 적용하기가 다소 애매모호하나 다른 사안에는 유용할 수 있으므로 꼭 알고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조커는 하비덴트와 레이첼의 위치를 반대로 가르쳐 주었는 배트맨은 속고야 말았다. 배트맨은 레이첼을 구하러 갔으나 결과적으로 레이첼을 죽게 만든 선택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배트맨은 조커에 놀아나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