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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패왕 Sep 05. 2022

다크나이트- 조커의 사회실험(2)

조커의 사회실험-2




1.조커의 사회실험 (2)    


리스라는 M&A 전문 변호사는 배트맨 소유인 웨인기업에서 응용과학 부서가 사라진 이유를 조사 한 끝에 회사의 재산 유용 사실을 알아챈다. 표면상은 군용 휴대폰 개발 명분이나 그 예산이 배트맨의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는 약점을 잡고 회사를 협박한다. 그는 매년 1천만불을 자신에게 지불하지 않으면 배트맨의 정체를 폭로하겠다는 것이다. 그 요구가 거절 당하자 급기야 그는 방송에 출연하여 이를 밝힌다. 

이에 조커는 자신이 이전과는 모순된 행동을 한다. 이전에 배트맨이 가면을 벗지 않으면 고담 시민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고  실제 판사와 경찰청장등 수많은 시민을 살해 했던 조커가 돌연 태도를 바꾸고 방송국에 전화를 해 사회실험을 한다. 

“난 배트맨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이젠 마음을 바꾸었다. 배트맨의 정체를 폭로하지 마라. 지금부터 60분안에 리스가 죽지 않으면 병원을 폭파하겠다”

즉 리스를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담시의 대형 병원을 폭파하겠다. 이것이 조커의 요구사항이다. 한 사람을 죽이느냐? 수백 수천명을 죽이느냐? 한사람을 살릴것이냐? 수천명을 살릴것이냐?의 위험한 게임을 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게임참가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얼핏보면 간단한 문제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 이 사안과 구별해야 할 문제.


1) 바다에 빠진 사람들

 바다에 사람이 빠졌는데 구명밧줄이 하나밖에 없다 가정하자. 이 밧줄을 1인에게 던질 것인가? 아님 아이스박스를 붙들고 있는 5명쪽으로 던질 것인가?

조커가 제시한 실험은 이 문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우이다. 구한다는 행동과 한사람을 죽인다는 행동의 도덕적 법적인 평가는 명백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리주의에 의하면 5명쪽에 밧줄을 던져야 한다고 할 것이고, 칸트의 의무주의에 의하면, 어떠한 목적이나 이유 조건도 없이 그저 절대 옳다는 신념하에 밧줄을 던진다면 그것이 1인쪽이건 5인 쪽이건 모두 선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의무주의는 5명이 친구들이고 1인이 범죄자 였기에 5명쪽으로 던졌다면, 개인적 친분이라는 정에 의지하였기에 그것은 선한 행동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것이다.      


2) 우는 아기 딜레마

조커의 게임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문제로서 우는 아기 딜레마(crying baby dilemma)가 있다.  적군의 수색으로부터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숲 속에  모여 숨을 죽이고 있는데,  아기 하나가 난데없이 울기 시작한다. 이 아기를 가만히 두면 군인들이 주민들을 전부 찾아내 죽일 것이다. 모두 죽지 않으려면 그 아기의 입을 틀어막고 죽여야만 한다. 

정리하면 '아기 1명 죽일것인가? vs 아이를 포함한 모두가 죽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경우 칸트주의에 의하면 아기를 죽이고 주민들이 살아나는 것은 비도덕적 범죄라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우리 인간의 고유한 의무도 아닐뿐더러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타당한 원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에 의하면 이 경우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항변에 칸트주의자들은 모두가 죽는 결과는 도덕적 행위와 관련없다고 주장한다. 보편적 의무를 다하였으면 그것으로 최선이지 그 결과는 그 의무 수행의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즉 결과는 도덕적으로 고려하여 할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소 무책임하고 때로는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칸트주의는 보통 사람이 지키기 쉽지 않은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공리주의에 의한다면 당연히 아기를 죽이고 주민들이 사는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3.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

조커의 사회실험과 직간접으로 관련 있는 문제가 트롤리 딜레마이다. 이는 윤리학에서 가정하는 사고실험의 하나로, 제동장치가 고장나 정지할 수 없는 전차 또는 탄광 수레(trolley)가 소수 또는 다수의 사람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을 경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게임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딜레마 1

운전자가 없는 트롤리가 빠른 속력으로 선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는데, 이를 모르고 이 선로에서 5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때 선로 밖에 서 있는 A가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선로 전환기를 당겨 트롤리의 진로를 바꾸면 5명은 살아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선로에 있는 한 사람이 죽게 된다. 

 이때 선로 전환기를 당겨 선로를 바꾸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가? 한 사람을 죽이고 5명을 살릴 것인가? 아님 그냥 5명을 죽일 것인가?의 문제이다.      


2) 딜레마 2

역시 트롤리가 선로를 따라 질주하고 있고, 선로에는 다섯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다. A는 선로 밖에 서 있고, 바로 옆에는 뚱보 한 사람이 서 있다. 다섯 사람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뚱보를 선로 위로 밀쳐서 그 무게로 트롤리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트롤리는 멈추게 되지만 그 사람은 죽게 된다. 즉 한사람을 죽여 5명을 살릴 것인가? 아님 그냥 5명을 죽일 것인가?       

조커의 제안은 트롤리 딜레마 1, 2와 결과에 있어서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진행 과정은 사뭇 다르다. 이는 후술한다.       


3) 트롤리 딜레마 해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에 의하면 위 두 사례 모두 다수인 5명을 살리는 선택을 해야 도덕적으로 선으로 평가될 것이다. 일반적인 형태의 공리주의에서 '작위로 인한 피해'와 '부작위로 인한 피해' 간의 차이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칸트의 의무주의에 의하면 아무것도 안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선로를 바꾸어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나 뚱보를 밀어 죽이는 등,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허용되지 않는 악행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의무주의론은 무력하기만 하다.      


4) 트롤리 딜레마 실제 연구결과와 해석(나무위키 참조)

학자들이 실험을 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례 1에서는 피실험자들의 89%가 "그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허용가능하다."라고 대답했다. 즉 거의 90%의 사람들이 5명을 살리기 위해 선로 전환기를 당겨 진로를 바꾸어 1명을 죽이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반면 사례 2에서는 단 11%만이 "뚱보를 밀고 5명을 살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즉 사례 2의 경우 90%는 5명이 죽도록 방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사례가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내용과 결과를 공통적으로 가짐에도 불구하고 피실험자들이 트롤리 사례 1은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 것으로, 사례 2는 허용 불가능한 것이라 보고 있다. 

 공리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결과는 모순된다. 공리주의로는 이 실험결과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의무주의 입장에서도 둘다 허용이 안되기에 이를 모순 없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럼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에 대한 타당한 해석은 실존주의 입장에서 가능할 것이다. 딜레마 1. 2의 상황은 명백히 다르다. 타인의 죽음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하느냐 여부로 보면 다수를 구하기 위해 1은 선로만 변경하는 행위를 하면 되지만 2는 직접살인을 해야 한다. A가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심에 따른 진지한 판단을 하고 결단을 내리면 선이라는 실존주의 입장에서 1은 선로 변경행위가 선한 행위가 되고,  2는 뚱보를 죽이지 않는 부작위를 고뇌에 찬 결단으로 인정해 선한 행동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트롤리의 딜레마에 대한 실험결과는 실존주의 윤리, 즉 상황윤리가 이문제를 모순없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본다.      


4. 조커의 실험에 대한 해결책

이제 영화속 리스를 죽일것인가 하는 본문제로 돌아가 보자.     


1) 공리주의 입장

행위의 동기나 목적 수단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을 고려하는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변호사 리스를 죽이고 병원과 환자를 보호해야만 할 것이다.     


2) 의무주의 입장

리스를 죽여 다수 환자를 살린다는 것은 의무주의 입장에서 허용될 수 없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행위원칙이 절대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무주의는 이 사태에 팔짱을 끼고 지켜 보고 있어야만 하는 한계를 보인다.     


3) 실존주의

보편적 진리, 보편적 도덕원칙을 부정하고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서 개별적 진리 와 개별적 도덕원칙을 옹호하는 실존주의 입장에서 행위의 도덕성 여부는 개인의 양심적 결단에 맡긴다. 즉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럼 없는 행위를 하였다면 그것은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옳지 않는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리스라는 변호사를 죽이는 행위라도 정의를 수호하고 고담시를 지켜야만 한다는 양심적 판단이라면 이는 도덕적 행위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이에 해당 할 것이다. 그리하여 양심있고 신실한 실존주의자라면 리스를 죽여 병원과 환자를 보호 할 것이다.      


4) 실용주의 입장

거대한 병원이 폭파당하고 수많은 환자들이 죽음을 당한다면 고담시로서는 엄청난 손해이다. 따라서 병원과 환자를 보호하여 고담시가 얻는 이익은 막대하다고 할 수있다. 따라서 실용주의 입장에서는 리스를 살해하고 병원을 보호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타당한 행위로 평가 받을 것이다.      

5. 조커 실험의 결과.


1) 사건의 진행

조커의 사회실험은 트롤리 2의 사례와 비슷하나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둘은 차이를 보인다.  

  조커의 협박에 절망한 고담시민들과 병원 관계자와 환자 보호자들은 리스를 죽이기 위해 행동으로 나선다. 이는 위에서 살펴본 대로, 공리주의, 실존주의, 실용주의입장에서 정당한 행위임이 분명하다. 이대로 진행되어 리스가 죽고 병원이 보호된다면 감독은 의무주의 보다는 공리, 실용, 실존주의 편을 들어 준 것이 된다. 

그런데 돌연 경찰은 리스를 차에 태워 시민들의 공격으로 보호한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가열차게 리스를 살해하려한다. 거친 공세로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지고 마침내  리스의 목숨이 끊어질 무렵, 이때 배트맨이 등장한다. 람보르기니를 훼손 시키면서까지 리스의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그 댓가는 가혹했다. 고담시의 대형병원이 폭파되고 수많은 환자가 사망했으며 50여명의 환자가 조커의 인질로 잡혀 납치되고 만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조커가 이번엔 약속을 지킨 것이다. 

2) 평가

배트맨이 리스를 구하지 않아 그가 목숨을 잃었다면, 그리고 조커가 약속을 지켰다면 고담시의 병원과 환자는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배트맨은 리스를 구했고 병원은 폭파되고 말았다. 고담시민에게는 절망이었지만 영화적으로는 경외심을 야기하는 결론이다. 영화는 감독은  값싸 보이는 공리주의 윤리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리스의 목숨을 지키려 노력한 고담시 경찰과 배트맨은 칸트의 의무주의 윤리관을 지켜낸 것이다. 사적이고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시민의 목숨을 보호한다는 의무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도덕률로 평가 받을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 의무를 지켜낸 것이다.     


우리는 때로 착하게, 의무를 수행하며 살 것인가? 행복을 위해 살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한다. 공리주의는 행복을 위해 우리가 산다고 가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행복, 즉 쾌락을 추구하며 살기를 부추긴다. 그래 최대다수의 최대 쾌락을 주장한다. 

이에 반해 칸트는 우리에게 값싼 쾌락보다는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며 살라 중고한다. 즉 착하게 살라한다. 

 배트맨, 아니 크리스토 놀란 감독은 조커를 통해 칸트를 선택했다. 수많은 희생을 치루더라도 칸트의 의무주의를 지켜 내야 한다는 그의 의지의 표명이 바로 조커의 두 번째 사회실험으로 나타난 것이다. 칸트에 대한 감독의 존경과 헌사를 읽을 수 있어 숙연해지 까지 한다. 

이 영화가 고품격 고수준의 차원 높은 영화로 평가받는 이유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현시대 최고의 감독으로 추앙 받는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공리주의 보다는 의무주의를!!! 쾌락보다는 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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