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연습 8 — 첫날의 설렘과, 작은 씁쓸함
인테리어 목공 수업이 시작됐다.
학원까지 거리가 있어서 집을 일찍 나섰다.
밖 공기가 아직 덜 깬 시간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는 첫날이라 그런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발걸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설렘이 먼저 앞서 있었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이 길었다.
안전교육도 빠지지 않았다.
실습은 없었다.
도구를 잡기 전에, 먼저 몸을 지키는 법부터 배웠다.
당연한 순서인데, 그 당연함이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목공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쏠리고 있었다.
이유는 이야기의 중심이 기술보다 ‘강사님 자신’ 쪽으로 오래 머무는 듯했다.
나는 ‘목공 자체’에 대한 설명을 더 많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기술을 배우러 왔는데, 그래서인지 듣는 내내 마음이 한쪽으로 계속 기울었다.
그 기울어짐은 ‘성실’이라는 단어가 반복될수록 더 선명해졌다.
특히 “초보 목수는 할줄아는게 없으니 성실하기라도 해야한다”는 메시지가 반복될 때, 그 말의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함이 남았다. 성실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성실이 ‘태도’라기보다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도 성실한 편이라고 믿는데, 그 성실을 누군가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기분이 들면 마음이 경직된다. 괜히 눈치를 보게 되고,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는 ‘연기’가 시작될까 봐.
첫날의 인상은 아직 한 장면일 뿐이다. 다음 수업에서는 내가 오해한 부분이 풀릴 수도 있다. 다만 오늘은, 설렘과 기대 사이에 작은 씁쓸함도 함께 섞여 있었다.
씁쓸함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내가 진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대가 컸으니 어긋남도 크게 느껴졌을 뿐이다.
일단은 기록해두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왔다.
나이도 직업도 이유도 다양했다.
각자가 지나온 길이 달라서, ‘왜 지금 이걸 배우려 하는지’도 전부 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다름 속에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마 다들 각자의 이유로 한 번쯤 ‘전환’을 통과해온 사람들일 것이다.
기술을 배우겠다는 말이, 누군가에겐 생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탈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20대 초반도 꽤 있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 깨닫고 기술을 배우려 한다는 게 내심 부러웠다.
나는 아마 제일 나이가 많은 편인 것 같다.
조금 웃프다. “나도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뒤늦게 따라온다.
그래도 지금은, 그 아쉬움을 너무 오래 붙잡고 싶지 않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걸 시작했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나는 늦은 걸 알기 때문에 더 간절하다.
이 간절함을 무기로 삼아, 더 성실하게 하나라도 더 배워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