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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tea Oct 22. 2023

기억의 지층


불세출의 영웅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개개인 삶은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이야기는 역사가 되고 세대를 이어 전달되죠.

사람이 기억을 품고 있듯이 장소가 기억을, 시간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에서 오래된 과거를 만나는 거죠.

언젠가 서울시 종로구 공평도시유적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양이라는 공룡의 화석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사람의 내면에 켜켜이 묻혀있는 기억의 파편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심연을 연구하는 정신분석학을 고고학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고대 유적은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될 때까지 그 자리에 풍화되고 화석화되어 파묻혀 있지만 사람의 기억은 현재라는 새로운 지층과 만나면서 지층을 뚫고 올라오기도 하고 더 깊은 곳으로 숨는 식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면서 그 모습이 변합니다. 파편화되어 있던 과거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해석되고 다른 기억과 연결되고 통합되기 때문에 일종의 소화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기억은 단단한 보호막을 만들어 소화를 막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자신을 믿고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새로운 지층을 만드는 일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 보면 소화되지 않은 파편 때문에 속이 쓰려도 끝내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소화하고 마는 그 과정을 목도하기도 합니다.

그 가슴 저릿한,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건 치료자로서 누릴 수 있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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