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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tea Oct 30. 2022

비밀을 말해줄게


 

술자리에서 친구가 방금 마신 소주만큼 쓴 표정을 짓습니다.

“대체 왜 내가 만난 여자애들은 다 사연이 있는지 몰라.”

여자친구가 과거에 성폭행당했던 일을 자신에게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말합니다.

“굳이 네가 그것까지 끌어안을 필요는 없지.”

저는 볼멘소리로 대꾸합니다.

“너를 믿고 이야기한 거잖아.”

결국 그 친구는 사연 있는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사연 없는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를 비난했지만 저 역시도 타인의 비밀을 품을 그릇이 되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짝 친구가 UFO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행물체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천천히 날고 있다가 갑자기 위로 사라졌다고.

“그 얘기 처음 듣는데?”

“후후, 니가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알고 말 안 했지, 00한테만 얘기했어.”

친구는 제가 그 말을 믿지 않을 걸 알았던 거예요. 저는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습니다.

“외계인이 너한테 우주 방사선을 뿌리고 갔을 거다, 우헤헤.”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한 말이었지 친구의 말을 정말로 믿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UFO 이야기는 완전히 잊혔다가 몇 년 후 영어학원에서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영어학원은 참 재밌는 곳입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도저히 감추거나 위장할 수가 없어 모국어로 절대 하지 않을 이야기가 여과 없이 송출됩니다. 그곳에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사적인 비밀을 듣고 있는 외국인 선생님과 점잖은 얼굴로 경청해 주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함경도 지역에서 유명한 바람둥이였습니다. 할머니가 속상해했습니다. 할머니가 병이 나자 할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아내를 돌봤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남자친구에게 차였습니다.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가 생긴 게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믿지 않습니다.”

 

하루는 언빌리버블 띵, 미스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필 세 명의 학생만 출석했고 아주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저는 제 친구가 경험한 귀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눈을 반짝거리면서 제 얘기를 듣고 있던 선생님이 자신의 삼촌 이야기를 했습니다. 삼촌은 파일럿인데 하늘에서 UFO를 수도 없이 본다는 겁니다.

듣고 있던 사람 중에 제 표정이 제일 진지했던 모양입니다. 먼 이국땅 검은 머리의 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이 믿어주다니 아이처럼 들뜬 표정이었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과 저 사이에 내적 친밀감이 생긴 건 당연지사였죠.

 

내가 엉뚱한 말을 해도 진지하게 들어줄 친구가 있다면,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을 거예요.

어렸을 때 그 친구는 엄마(아빠)입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벽장 속 도깨비에 대해 이야기하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 비밀이 생깁니다. 그 비밀을 인형이나 친구와 나누고 싶어 하고 열쇠가 달린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친구 같은 엄마, 아빠가 소원이던 부모는 이 시기에 큰 상실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비밀이 생기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면 곤란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거리를 존중해야 하죠.

그 시기가 찾아오고 나서 가까운 친구나 반려자가 있더라도 비밀을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고립감과 두려움을 안고 병원을 찾기도 합니다.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가 주고받은 이야기는 두 사람만 아는 비밀과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정신과 의사는 커튼을 치고 신체를 진찰하는 것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한 사람의 매우 사적인 공간에 초대받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심리적 공간이며 그곳에서 두 사람은 손을 맞잡게 됩니다.

둘 중 어느 한 명이 팔을 걷어붙이는 것이 아닌, 보다 은근한 방식이지요. 물론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누던 중 집 안에 자기도 모르는 비밀 옷장이 있는데 제가 옷장 문을 열어젖히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함께 춤을 추는데 제 발이 쑤욱 들어와 춤 선이 망가진 거죠. 어두운 곳에서 함께 춤출 상대를 고른다면 화려한 스텝을 밟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할 것입니다.  

 

비밀을 말할 때 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죠. 꿈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그런데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해야 하고 그것을 말할 때 감정적으로 압도되지 않을 만큼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상상 속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노출한다는 건 때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중에 꾼 꿈보다 한낮에 상상했던 백일몽, 공상을 말하는 걸 조금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여기서 어떤 아이가 오랫동안 혼자 간직했던 백일몽을 저에게 말하고 나서 치료의 전환점을 맞았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부모 손에 이끌려 병원에 온 그 아이는 처음에 모자를 눌러쓰고 의자 깊숙이 기대앉았습니다. 그 후 진료 예약이 있을 때마다 병원에 왔지만, 저와 거리를 두고 싶어 했습니다. 부모와 따로 살고 있어 아이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는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시간 낭비라는 인상을 주려 했습니다. 늦잠을 자다 외래로 온 날에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죠. 일진과 마주 앉은 전학생이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강박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습관처럼 내뱉던 혼잣말을 강박증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 혼잣말은 어릴 적부터 상상했던 어떤 장면과 연결된 것으로 상징과 의미가 가득했습니다. 제 앞에서 처음으로 상상의 보따리를 풀어놓던 그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그날, 우리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아주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아떨어지고 드디어 ‘달칵’하고 마찰력을 넘어선 힘이 걸린 것이지만 그 힘의 결정적인 열쇠는 ‘비밀을 안아줌’이었습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카사하라 요미시의 말처럼 누군가 비밀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이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양해를 구하고 미루는 것도 현명한 방법입니다. 수술에 비유하자면 무조건 비밀에 칼을 대서 헤집어 놓는 것이 아닌 최소한의 절개를 하는 것이지요.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싶더라도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섬세한 배려가 앞서야 합니다. 저는 춤도 잘 추고 싶고 비밀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고 싶습니다. 상대방이 저에게 폭 안겼을 때 그 표정을 보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Blos, P. (1983). The contribution of psychoanalysis to the psychotherapy of adolescents. The Psychoanalytic Study of the child, 38(1), 57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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