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en tea Oct 30. 2022

똥오줌도 못 가리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을 두고 ‘똥오줌도 못 가린다’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똥오줌‘도’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 능력을 얕잡아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대소변 가리기는 절대 당연하지 않은 능력입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치느냐 들를 것이냐 결정할 때, 앞으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찬스가 2시간 후에 있을 것을 예측하고 그때까지 남은 방광 용적을 가늠하게 됩니다. 이때 차가 막힌다거나 짠 음식을 먹고 물을 마구 들이켜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가 됩니다. 아주 고차원적인 능력이지요.

 

이처럼 당연하지 않은 능력을 어떻게 장착하는 걸까요?

출생 후 아기는 아무 때나 자고 아무 때나 먹고 아무 때나 쌉니다. 무질서해 보이는 생체 시계가 점점 사회의 시곗바늘과 비슷한 사이클로 돌게끔 훈련하는 것이 사회화의 첫걸음입니다.

이것은 오케스트라 합주처럼 신체 장기와 뇌의 발달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하므로 시간이 걸립니다.

자다가도 각성을 일으킬 정도로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으면 어김없이 깨서 우는데, 이 울음소리는 부모를 움직여 아기의 불쾌함을 해소시킵니다. 부모가 알아서 다 해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기의 몸속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콩팥에서 만들어진 오줌은 방광으로 유유히 흘러 들어오는데, 모인 오줌을 언제 수문을 열어 방류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두 개의 수문장이 오줌의 통행을 관장합니다.  

200mL 우유 한 팩 정도의 오줌이 모이면 방광 벽이 늘어나고 이 자극은 감각신경을 통해 중추신경인 척수로 이동합니다. 이 자극은 방광 운동신경을 흥분시키게 됩니다. 방광 벽의 근육을 수축시키면서 안쪽 수문을 개방합니다.

동시에 방광 벽이 늘어난 정보가 뇌로도 전달되어 오줌이 마렵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 상황이 적절하면 뇌는 바깥 수문을 마저 열고 오줌을 방류시킵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바깥 수문을 걸어 잠그게 됩니다.

이처럼 배뇨는 배뇨 반사작용과 의식적인 조절이 함께 관여합니다. 영유아에서는 바깥 수문 역할을 하는 바깥 요도조임근과 신경 사이의 연결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광에 오줌이 어느 정도 차면 그대로 오줌을 싸게 됩니다.

이 오케스트라가 화음을 맞추려면 대개 2~3년 정도 걸립니다.

 

‘우리 애는 기저귀를 일찍 뗐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다른 부모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우리 애는 왜 아직도 오줌을 못 가리지, 혹시 문제가 있나?

이때부터 부모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주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일찍’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때’가 중요할 뿐입니다.

대소변 훈련기에 아이도 부모도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때 아이를 크게 혼내는 경우가 많은데, 대소변 가리기는 공포심을 자극해서 학습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 시기의 배뇨는 반사작용인데, 재채기를 참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가 통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두고 흔히 백일의 기적이라고 말하는데요, 밤에도 낮에도 아기의 몸은 쉬지 않고 안팎에서 오는 자극에 리듬을 맞추며 온몸의 악기가 하나의 하모니를 낼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를 지휘합니다. 주변 어른이 아이에게 일어나는 전체 과정을 이해한다면 조금은 더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성공적으로 대소변 훈련을 마쳤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화장실 가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이 신경 쓰여서 배설이 안 되는 것입니다. 먹고 싸는 일은 부교감신경이 관장하는데, 긴장하면 반대 교감신경이 활성화됩니다. 방광의 수문을 꽉 쪼이고 있으면 될 일도 안 되지요. 이를 두고 ‘Shy bladder’라고 하는데, 방광이 낯을 가리는 겁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지 않고 버티다가 수업 시간 중간에 위기를 겪거나 집에 오는 길에 오줌을 싸게 됩니다. 이미 획득한 조절 능력이지만 심리적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큰 아이들에게도 문제가 됩니다.

 

다 자란 성인이 겪는 고통도 있습니다.

1~2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경우, 일상의 호흡도 짧아집니다. 자리에 앉아서 작업을 하려는데 곧 다시 일어나 화장실에 가야 합니다. 짧은 호흡으로 일하다 보니 몰입도 안 되고 능률도 떨어집니다.

여기에 화장실 낯가림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심각해집니다. 집에서 1~2시간 떨어진 곳 말고는 멀리 나가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 기저귀는 이동식 화장실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화장실을 소환시킬 수 있었죠. 성인의 경우, 자유를 얻고 편리함은 내어줬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이동의 자유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진료실에 온 아이가 대소변 가리기 과정을 성공적으로 졸업했지만, 공부나 게임 문제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 봅니다. 어떤 아이는 공부는 잘하지만, 그 졸업장을 따지 못해 힘들어하는 걸 모르겠지요. 대소변 가리는 능력은 실로 대단한 능력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자유자재로 화장실 가는 일을 통제하고 있다면 자축할 일입니다. 그것만으로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겠죠.



이전 08화 인생은 한 편의 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