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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tea Oct 30. 2022

자연을 닮은 기분 1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잿빛 하늘과 올드타운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마치 동화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후가 되자 잿빛 구름이 한층 더 짙어졌고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에든버러 성 주변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서둘러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날 관광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비에 젖은 건물과 보도 사이에 고인 물웅덩이만이 좀전까지 비가 왔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루에도 사계절이 다 있다더니, 과연 그랬습니다.


저는 기분 변화가 심한 분께 이런 비유를 들어 설명하곤 합니다.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 내 안에도 사계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사계절이 짧은 시간 안에 바뀝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사람은 기분 변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빠르고 진폭이 큰 사람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혹한기라면 출근도 못하고 연차를 냅니다.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있다 오줌을 싸기 일보직전에 일어납니다. 세상과 엇박자로 가는 자신이 한심하고 문득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러다 1-2주 후, 평소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이 기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이대로 가다가는 큰 일 날 것 같다는 위기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빽빽한 스케줄에 멱살이 잡혀 끌려가다 결국 파투를 내게 됩니다.


감정 기복이 큰 사람은 기분이 업 되는 기간도 있으니 우울증만 앓고 있는 분보다 덜 힘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분이 들뜰 때와 가라앉을 때를 산과 계곡에 비유하자면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습니다. 기분이 과하게 들뜨고 난 후 찾아오는 우울은 훨씬 깊습니다. 평지와 계곡 사이보다 그 더 낙차가 큰 셈이죠. 벼락부자에서 갑자기 거리로 나앉는 것과 같습니다. 오랜 가난도 힘들지만 급격한 변화는 심한 불안과 부적응을 낳습니다. 이렇게 기분의 산과 계곡을 경험하는 경우, 양극성 기분 장애라고 하고 단극성 우울증을 앓는 사람보다 평생 자살 시도율(the life time rate of suicide attempts)이 더 높습니다.*


이렇게 혹한과 혹서를 경험할 때엔 기능성 의복과 같은 현대문명의 이기를 이용해야 합니다. 바로 약이지요. 약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기분을 좋게 해 줄까요? 아닙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마약이겠죠.

약의 효능에 앞서 ‘배경 음악’을 먼저 설명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서 어떤 배경 음악이 흐르냐에 따라 현재 전개되는 장면이 연애물이 될 수도 호러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경 음악은 중요합니다. 백화점에서 경쾌한 음악 대신 곡소리가 흘러나온다면 물건을 사기 어렵겠죠. 배경 음악을 '배경 기분’으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약물 치료는 덧입혀진 배경 음악의 볼륨을 줄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기분을 약으로 치료한다니, 그게 가능한 걸까요? 어떤 사람은 약물 치료가 도움이 됐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남들이 이렇게 맑은 기분으로 살아가는 줄 몰랐어요. 늘 구름이 끼어 있는 것 같았거든요.”


감정 기복에 약물 치료가 꼭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기분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 개입이 필요한지 아닌지 그 경계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디 전문가에게 맡기시기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약 이외에 대처 방법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Chen, Y. W., & Dilsaver, S. C. (1996). Lifetime rates of suicide attempts among subjects with bipolar and unipolar disorders relative to subjects with other Axis I disorders. Biological psychiatry, 39(10), 896-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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