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패랭이꽃의 행복 감각들I
낯선 사람들과는 처음부터 식구인 사람은 없다. 우리는 밥상에서 조금씩 가족이 되어 간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낯설었다. 이름은 잘 외워지지 않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낯선 이들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레 숨을 섞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함께 나누는 밥 냄새가 모든 경계를 녹였다. 우리는 김이 피어오르는 솥 앞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는 밥을 푸고, 누군가는 국을 덜었다.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속에서 어색한 기류가 풀려 나갔다.
밥상을 나누는 시간이 쌓이고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낯선 사람들이 낯선 환경에서 가족이 되어가는 장면을, 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다. 개그맨 이승윤 씨와 함께, 그날의 주인공은 거친 바닷바람을 벗 삼아서 살고 있던 김매수 씨였다.
세상과 등을 지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그의 모습엔 묘한 강인함과 애절함이 녹아 있었다.
그는 방송 중에 자기 사연을 쏟아냈다.
“이혼도 하고, 다시 결혼도 했죠. 한때는 아내가 데리고 온 세 아이와 함께 살았어요. 어색했어요. 하지만 함께 밥을 먹다 보니, 한 5년쯤 지난 후에 아버지라고 불렀어요. 너무 좋았지요. 그렇게 한 식구가 된 거지요.”
그의 과거 사연을 듣는 순간, 나는 오래 숨겨두었던 한 얼굴이 떠올랐다. 끝내 가족이 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 식구가 된 거지요.”
짧은 문장 속에는 숱한 시간의 온기와 고단함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은 오래된 나무 밑에서 피어오르는 인생의 숨결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마주 앉아 마음을 여는 식탁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건 마음의 의식과도 같았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동안, 우리는 말하지 못한 하루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한 끼의 밥상은 사람을 잇는 다리다. 숟가락을 뜨는 사이, 마음은 조금씩 열린다. 타인으로 만난 이들이 서로 가족이 되고, 낯선 이가 내 인생의 일부로 자리를 잡는다. 피보다 오래된 시간 위의 밥그릇이 빚어놓은 식구다. 서로 말투에 익숙해지고 눈치를 덜 보게 되는 시간, 그 과정이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의 완성이다.
내게도 그런 인연이 있다. 낯선 일본인과의 만남이었다. 우연히 한국을 방문했고, 내가 머물던 하숙집에서 함께 묵었다. 그는 젓가락을 어색하게 쥐고 사용했다. 나는 괜히 그 모습이 거슬리기도 했다.
한때는 너무 낯선 감정, 가까워지기 힘든 불편한 외국인이었다. 가치관도, 습관도, 언어까지 달랐다. 우리는 쉽게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았다.
한동안 함께했어도 마음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불편한 감정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밥상 위의 시간이 마음을 녹였다. 눈이 내리던 늦겨울날, 우연히 함께 밥을 먹었다. 그날의 식탁엔 특별한 반찬도 없었다. 따뜻한 된장국 한 모금이 묘한 울림을 낳았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사실 낯선 곳이라 처음엔 두려웠어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속 벽이 스르르 무너졌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말보다 밥 한 끼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누군가는 밥을 짓고,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조용히 그 밥상에 앉는다.
그 공간이 바로 ‘삶의 집’이다.
가끔은 다투고 오해하며, 때로는 서운한 말로 가슴을 찌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마주 앉는다. 그게 인연이고 가족이고 식구의 길이다. 상처를 서로 봉합하는 것도 결국 마음이다. 서로 부족함을 품고, 미움을 덮고, 다시 웃는다. 그게 밥상 위의 인연이자 식구로서 살아가는 공동체다.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말없이 밥을 먹는다. 국은 조금 싱거웠고, 반찬은 늘 좋아하던 것이다. 그런데 서먹서먹해도, 밥숟가락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낯설었던 일본인 친구, 함께 식구라는 깊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쯤 어디에선가, 또 다른 밥상 앞에 앉아 새로운 식구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 기안장의 또 다른 행복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