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보고 깨를 사달라고 했다고
울 여름 친정 엄마랑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다가 내가 사는 곳은 깨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 했더니 엄마가 깨 몇 되만 사달라고 하셨다. 살림을 살면 깨소금도 해 드셔야 되고 참기름도 짜드셔야 되니 사달라고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염두에 두었다가 엄마에게 줄 깨를 샀다
두어 달만에 친정 나들이를 갔다
"엄마가 부탁한 깨 사 왔어"
엄마는 어리둥절하시더니 내가 너보고 깨를 사달라 했다고
이게 무슨 소리지 의아해하는 순간, 아버지께서" 너희 엄마 그런 거 모른다" 하신다.
약간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
엄마의 말투와 표정에서 엄마의 병환이 깊어간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는 올해 연세가 93살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손수 식사준비도 하시고 집안 살림도 대충 하는 법 없이 깔끔히 하셨고 자기가 맡은 일은 정확하셨고 예의범절을 너무 철저히 지켜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 성품은 어딜 가고 했던 이야기 또 하고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녹음기를 재생하듯 토씨하나 안 틀리고 계속 같은 말씀을 하신다,
초기 치매증상까지 발전한 느낌이 든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너희 할머니가 날 시집 살린 이야기, 베짜던 이야기, 절에 가서 1달 동안 수행한 이야기,..
내가 옛날엔 펄펄 날아다녔는데 이 아파트에 갇혀 꼼짝도 못 하고 살게 되었다고 욕을 욕을 한다.
엄마는 지금껏 욕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생소한 모습이다. 말로만 듣던 그 무서운 치매가
내 가족 내 엄마에게도 왔구나?
그렇게 불교 수행을 열심히 하던 수행자의 모습은 어딜 가고 저렇게 불평불만과 욕을 하실까?
무의식 속에 저토록 많은 한과 분노가 있었단 말인가?
엄마의 말년이 가련하고 불쌍하다.
옆에서 함께하시는 아버지는 더 불쌍하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음에 올 땐 딸도 몰라보시진 않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