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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배 Mar 21. 2024

모든 것을 탈중앙화할 필욘 없다

자산의 토큰화

래리 핑크 블랙록 CEO. 출처=블룸버그
금융 자산의 토큰화는 기술적 혁신이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


토큰화된 자산이 가시화되며 어떤 체인에 자산을 올릴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지고 있다. 각국의 중앙은행, 특히 미국의 경우 프라이빗 블록체인 활용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 일부에서는 프라이빗 체인에 자산을 토큰화할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프라이빗 체인과 같은 허가형(permissioned) 네트워크의 통제는 결국 소수의 주체가 맡게 될 것이며 이들은 쉽게 해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규제 당국과 기관들이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인 탈중앙화를 잘 못 이해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탈중앙화가 이뤄지지 않은 블록체인은 정말 의미가 없는 걸까?     


탈중앙화라는 스펙트럼

중앙화와 탈중앙화는 사실 이분법적으로 나눠지기보다는 하나의 스펙트럼에 가깝다. 기술적으로만 봤을 때는 데이터가 얼마나 한 곳에 몰려있는지 또는 분산되어 있는지가 요점이지만, 권력이나 권한의 집중을 막기 위한 요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에이다, 리플, 솔라나 등 가상자산은 노드의 특성과 구조에 따라 각기 다른 탈중앙성을 지니게 된다. 누구나 쉽게 노드 운영자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있는가 하면 재단의 허락(?)을 받아야 참여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노드 운용 비용이 적게 드는 체인이 있는가 하면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은 체인도 있다.      

프라이빗 체인은 어떨까? 퍼블릭 체인보다 노드 수 자체는 적을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허가된 주체들의 참여로 분산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어떻게 설계했는지에 따라 중앙화 수준이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다는 점은 퍼블릭 블록체인과 유사하다.      


가령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은행 간의 체인을 만든다면 중앙화 수준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미국 전역에 있는 은행으로 확장한다면? 나아가 OECD 국가의 은행을 포함한다면? 과연 중앙화된 구조라 볼 수 있을까?      


물론 은행 간의 단합이나 금융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 있다. 애초에 비트코인 자체도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통제 주체가 없다는 것은 시스템 건전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다.     


퍼블릭 블록체인에 자산을 보유한다는 것은 허허벌판에 지갑 하나 들고 서 있는 것과 같다. 사이버 보안이나 디지털 기기 관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한번 지갑을 강탈당하면 롤백이나 반환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 크립토 업계 디젠들도 해킹을 당하는 환경에서 일반인들은 그저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다.      


자유와 안전은 상충한다

현금을 사용할 경우 5천원을 내려다 실수로 5만원을 내거나 잔돈을 잘 못 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잃어버리거나 강탈당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카드를 사용할 경우 잘못된 결제는 취소하면 된다. 카드를 잃어버렸다면 정지시키면 된다. 신고하기도 전에 부정 사용당했다면 소명을 통해 전액 또는 일부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현금과 카드의 차이는 통제 주체가 없는 체인과 있는 체인의 차이와 유사하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누가 해킹을 당했다고 해서 체인을 멈추거나 해커의 계좌를 동결할 수 없다. 가상자산이 거쳐가는 플랫폼이나 테더(스테이블코인 발행사)와 같은 통제 기관이 탈취 자금에 태깅을 하거나 계좌를 동결하는 방법 등만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해커들은 잘 빠져나가고 있다.      


실수로 가상자산을 모르는 지갑에 보내거나 약속된 금액보다 더 많이 보냈을 때도 문제다. 모르는 지갑에 보냈다면 애초에 누구의 지갑인지 모르니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다. 약속된 금액보다 더 많이 보낸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양심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일반 대중이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리스크가 큰 서비스(?)다.  

출처=이정배/DALL·E

여기서 잠시, 비트코인을 비롯한 퍼블릭 블록체인은 애초에 국가나 기존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굳이 국가나 금융기관이 퍼블릭 체인을 이용할 이유가 있을까? 부정부패를 떠나서 애초에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금융기관 또한 이익이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제의 발전과 안전을 중시해야 한다.


결국 예측 가능성과 안전성의 보장이 중요하다. 그러나 퍼블릭 체인의 경우 개발 방향이 재단이나 주요 개발자들에 의해 정해지곤 한다. 어떨 땐 트렌드에 맞춰 급작스럽게 용도가 변경되기도 한다. 인스크립션을 예로 들 수 있다. 비트코인 NFT를 만들기 위해 인스크립션이 나오자 다른 체인들도 이를 따라했다. 몇몇 체인은 인스크립션으로 인해 네트워크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거대한 실험장이자 누구나 낙서하거나 장난을 칠 수도 있는 공공의 벽이기도 하다. 예측 불가능한 물건이란 것이다. 물론 재단의 로드맵 등을 통해 일정 부분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특정 문제가 발생했을 시 재단이 꼭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법은 없으며 커뮤니티가 나아가고자 하는 부분과 상충할 시 오히려 배제될 확률도 있다.


확장성과 효율성에 집중하다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금융상품을 운용하는 기관이나 기업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스템과 운영비용의 효율화,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한 자동화 등 블록체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요소다. 그래서 일부 기업은 탈중앙성을 제외한 블록체인의 다른 특징인 확장성과 효율성에 집중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과 같은 대형 금융기업들은 이미 자체 체인을 구축했다. 일부는 이미 서비스를 시작해 체인을 운용하며 기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JP모건의 경우 프라이빗 체인의 장점을 활용하여 거래 체결이나 정산 과정의 효율성을 개선했으며 자동화를 통해 수천 단계를 거쳐야 하는 고객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작업을 단순화시켰다. 나아가 크로스체인 기술을 활용하며 다른 생태계와의 접점도 형성하고 있다.    

  

프라이빗 체인 구축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자본과 기술이 뒷받침되는 일부 금융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체인을 구축하겠지만 그러지 못한 기업들은 다른 프라이빗 체인에 합류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들은 고객인증이나 자금세탁방지 등 금융 관련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퍼블릭보다 프라이빗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나가며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활용에 있어 탈중앙성은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기술의 다른 이점을 살려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면 일정 부분의 중앙화는 감수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자산의 토큰화에 있어 탈중앙화보다 중요한 요소는 상호운용성이라 생각한다. 한곳에 국한된 자산은 제한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는 토큰화 인프라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축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파편화된 웹3 생태계처럼 초기에는 국지적인 특성을 보일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토큰화된 자산이 실질적인 효용성을 얻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생태계가 호환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토큰화된 자산 시장은 상호호환 가능한 방향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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