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생존기16.

-워킹맘 책방지기란.

by noodle

아침 일찍, 이모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쉬시는 날, 따로 전화하실 일이 딱히 없는데 집에 잠깐 들르시겠다는 이모님. 그때부터, 워킹맘의 가슴은 뛰기 시작합니다. 왜지? 무슨일이지? 어디 아프신가? 너무 힘드셔서 더이상은 안하고 싶으신걸까? 손녀를 봐줄 일이 생기신 건 아닐까? 애들이 너무 말을 안들었던걸까?

이모님이 오시기로 한 시간까지 1시간 남짓, 어설픈 집안일 처리에 박차를 가하며, 평소보다 훨씬 깨끗해보이고자 이제라도 애써봅니다. 수만가지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스칩니다. 만약에, 이모님이 정말 못오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급여를 올려드린다고 회유 해봐야 하나? 쉬는 날 아침에 구지 집까지 찾아오실 일이 도대체 무얼까?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말끔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모님과 함께 한 세월이 어느새 10년을 바라보는 나는, 이모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워킹맘입니다.

처음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을때, 이모님께 커밍아웃 하기까지 몹시 망설여졌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가진 그나마의 여유 시간을 책방에 쏟게 되면 그만큼 이모님께서 가사 노동이나 아이들 돌봄의 비중이 가중된다고 느끼실까봐 노심초사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모님은 불평이 아닌 응원으로, 전과 다름없이 묵묵히 내 삶을 서포트 해주셨습니다.

이모님이 처음 우리집에 오셨던 것은, 지금 열살 인 우리 딸이 갓 돌을 지났을 무렵. 복직을 앞두고 있었던 극심한 심리적 불안 상태의 워킹맘 한마리. 거의 포효하는 심정으로 이모님을 절실히 구했던 그 시절, 내 간절함이 전달되었는지 지금의 이모님과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모님은 정말 인품이 멋진 배울 것이 많은 어른입니다. 휴대폰 중독자인 나와는 정반대로 이모님은 늘 폰을 내려두고 아이와 눈맞춤을 해주셨고, 내 책 읽기 바쁜 나와 달리 아이의 눈높이에서 책을 읽어주셨습니다. 저렴한 표현과 다소 귀여운(?) 욕이 난무하는 나의 입버릇. 이모님은 늘 고상하고 예쁜말만 쓰십니다. 어느날엔가 나는 이모님의 따님께 그런 편지를 썼더랬습니다. 이모님이 엄마여서 부럽다고요. 아마도 그녀가 아이를 낳았던 것을 축하하는 편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만가지 생각과 상념에 깊숙히 빠져들기 시작할 때쯤, 띵똥, 이모님이 오셨나봅니다.

대체, 무슨일일까요? 심장은 더 크게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이모님, 어서오세요. 의 요를 마치기도 전에, 어머 이모님 다치셨어요?

이모님은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등장하셨습니다. 며칠 전 어깨를 다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하게 수술을 하셔야 할 것 같다고요. 아무래도 이번 달에 아이들을 봐주실 수 없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시는 이모님께, 나도 모르게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모님 어디 가시는거 아니죠? 수술 하시고, 푹 쉬시고 다시 오시는거죠?

저 너무 놀랐잖아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잖아요. 주책떨고 싶지 않았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나네요. 이모님 안계시면 저는 회사고 애들이고 책방이고 다 어떻게 해요...


이모님이 가시고 나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플랜을 세워봅니다. 이제 우리가 버티어야 할 한달이 주어졌습니다. 육아 10년차 만에, 어쩌면 진짜 워킹맘의 매운 맛을 맞딱뜨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이렇게 살고 있는거겠지요?

친구네 집 밥이 너무 맛있대요.

퇴근하면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우리집 거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싱크대에 설겆이만 한가득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해주셨던 감사함을 잊지 말라는 작은 경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아침에 아빠도 엄마도 이모님도 없이 등교 준비를 합니다. 제법 기특하게도 스스로 빵을 먹고, 물병도 챙기고 (물론 자주 두고 갑니다) 늦지않게 (물론 대부분 아슬아슬합니다.)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 도착했다는 알림이 딩동 울리면, 나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쪽잠에 빠져듭니다.

내가 외국에 있어 연락이 어려운 아침에는 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에게 연락을 합니다. 아직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 첫째는 모닝콜부터 시달려야 합니다. 가방과 동생까지 챙겨 학교에 다녀오고 나면, 아파트 옆라인의 친구집으로 갑니다. 따뜻한 이웃이 있어 버틸 수 있는, 나의 아슬아슬한 하루 하루.

친구네 공부방이 열렸습니다.

그렇게 모두의 도움으로 꾸역꾸역 오늘을 살아냅니다. 조금만 지나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천사같은 이모님이 돌아오시겠지요.

오랜시간 우리 가족을 지켜주신 이모님께도, 우리 아이들을 받아준 고마운 이웃들에게도, 아침마다 전화로 아이들 챙겨준 언니에게도, 이모님도 나도 없이 고군분투했을 남편에게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스스로 자라나고 있는 기특한 아이들에게도,

메리크리스마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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