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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원 주미영 Apr 28. 2023

세기의 사기인가, 세기의 사랑인가?

나라 말아먹은 조선판 국정농단 부부의 최후는?

   

오늘은 경기도 파주의 야산으로 향했다. 제법 산림이 울창한 가운데.. 인적이 드문 곳에 여러 기의 무덤이 흩어져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파평 윤 씨 정정공파 종중묘!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윤원형과 정난정. 임금보다 더한 권세를 누린 신하. 그 남자를 움직여 천하권세를 나눠 가진 여인!


2000년 초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윤원형(이덕화씨)과 정난정(고 강수연씨)


윤원형은 그 유명한 문정왕후 윤 씨의 남동생이다. 문정왕후는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세 번째 왕비. 첫째와 둘째 비가 폐위되거나 죽은 후 왕비가 되어.. 기세등등한 후궁들과의 28년간의 암투 끝에 자신의 아들 명종을 임금 자리에 올리며 권력을 손에 거머쥐었다. 명종의 어머니가 문정왕후이니 그녀의 남동생인 윤원형은 명종의 외삼촌이 된다. 외삼촌이면 가까운 친척이기는 하지만 조선에서 왕의 외삼촌이라고 누구나 권력을 누린 건 아니었다. 그런데 명종 치세에서는 실질적 왕 노릇을 문정왕후가 하고 있었고 그녀의 심복 중 심복이 윤원형이었으니... 왕의 외삼촌이어서가 아니라 문정왕후의 동생이라는 것이 윤원형 권세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윤원형은 명종 즉위 직후 문정왕후의 후원 아래 을사사화를 일으켜 중종 시절부터 정적으로 대립해 온 또 다른 파평 윤 씨 세력, 즉 대윤과 사림 선비들을 숙청했다. 2년 후에는 양재역 벽서사건... 즉 문정왕후를 비방하는 익명의 벽문서가 발견된 사건을 일으켜 잠재적 반대 세력마저 모조리 제거했다. 이렇듯 윤원형은 정적 제거의 선봉대 역할을 수행하며 온갖 공신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벼슬로는 호조참판, 예조판서,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까지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그의 위세는 신하의 수준을 넘어섰는데...

한 번은 윤원형이 요양을 한다며 경기도 광주로 목욕을 하러 갔는데.. 목욕하는 장소에 논을 메워 임시 건물을 짓고 수많은 지방 관리와 백성들이 동원돼 온갖 법석을 떨었다는 이야기가 실록에 나와 있다. 얼마나 사치가 심했던지.. 으리으리한 저택을 13채나 갖고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윤원형이 죽고 난 후 그를 평가한 실록의 내용을 몇 대목 소개하겠다.


“윤원형이 사람들을 풀 베듯 죽이며 흉악한 짓을 있는 대로 다했다...”     


“과거에 권력을 가진 간신으로 그 죄악이 하늘까지 닿기로는 윤원형 같은 자가 드물 것이다.”     


“윤원형은 무슨 일이고 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문정왕후와 내통하여 명종을 위협하고 제재하여 임금의 근심과 분함이 말과 안색에까지 나타나게 하였다.”     


“정사를 잡은 지 20년, 그의 권세는 임금을 기울게 하였고 조정과 민간이 모두 몰려가니 뇌물이 문에 가득해 국고보다 많았다.”

(명종실록 ‘윤원형의 졸기’ 중)   


한마디로 윤원형은 국정농단과 권력형 부패의 끝판왕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에게 필생의 동반자가 있었으니.. 바로 정난정이다. 2000년대 초 방영된 TV사극 ‘여인천하’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강수연 씨가 정난정 역을 맡아 열연했다. 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관비 사이에서 태어난 정난정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수차례 이름이 등장한다. 출신이 미천하였으나 뛰어난 미모와 수완으로 윤원형의 첩이 되었고 이어 본부인이던 김 씨를 밀어내고 정실부인 자리를 차지했다. 마침내 명종 8년에는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어 입지전적인 신분 상승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했다.

     

정난정은 윤원형과 함께 각종 부패 행위를 저질렀는데 실록에서는 윤원형이 “처를 내쫓고 첩 난정을 처로 삼아 매우 사랑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따랐으니, 뇌물을 받고 약탈한 일도 그 첩이 부추긴 것이 많았다.”라고 기록했다. (명종 20년 8월 27일)     




정난정은 남편을 통해 국가 정책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중에는 서얼 신분인 사람도 벼슬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한 서얼허통법이 있다. 자신의 자식들이 훗날 어머니의 출신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여졌지만,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조선에서 파격적인 정책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오르던 윤원형과 정난정이 하루아침에 추락하고 말았으니... 바로 그들의 뒷배였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문정왕후가 사망하자마자 조정에서는 윤원형과 정난정을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명종은 80여 차례에 걸친 요청에도 두 사람을 고향에 가서 근신하라고 명하는데 그쳤다. 해서 두 사람은 황해도 강음이라는 곳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14년 전 쫓겨난 후 사망한 윤원형의 전처 김 씨가 사실은 정난정에 의해 독살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처 김 씨의 모친이 호소하기를... 정난정이 김 씨를 굶주리게 한 후 독이 든 음식을 줘서 살해했는데, 윤원형과 정난정의 위세가 두려워 그동안 말을 못 했다는 것이다. 윤원형에게는 26가지 죄목으로 처벌 요구가 빗발치고 여기에 전처 독살 사건까지 터지니... 한 때 나라님도 부럽지 않던 두 사람은 갈수록 궁지에 몰렸다.


이 즈음 의금부 소속 금부도사가 다른 업무로 근처를 지나고 있었는데 이를 본 종이 두 사람을 잡으러 오는 것으로 오해해 즉시 알렸고, 이 소식을 들은 정난정은 잡혀갈 바에는 죽겠다며 독약을 먹고 생을 마감했다. 윤원형은 정난정의 죽음을 보고 분하고 답답해하다가 닷새 뒤에 그녀의 뒤를 따라 죽었다. 문정왕후가 떠난 지 단 7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파주의 이름 모를 야산에 역사 속의 남녀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이 찬란한 봄에 문득 악녀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온 정난정의 묘가 쓸쓸해 보여서.. 잡초 몇 포기를 뽑아보았다. 세상 권세를 다 쥔 듯했던 부부...


땅 속에 묻혀 있는 450년 세월에 육신은 흙이 되었을 테고... 사랑은 바람이 되었을까...     
 

   
윤원형 묘 비석

왼쪽이 윤원형 묘이고 뒤쪽 작은 비석 뒤에 있는 것이 정난정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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