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 다시 묻는 교육의 방향
아래 글을 브런치에 올리려고 준비해 두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거짓말하고 학원에 가지 않았고 가지 않은 이유가 공부해야하는데 하지 않아서 할 게 많아서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 중이란다. 무얼?
난 아랫글처럼 키우고 싶었고 바란다. 지금의 모습보다 더 먼 십년 이십년 후의 어떤 모습이 되어 있고 되어가기를 상상하며 말이다. 아들도 나도. 한 인간으로서
TV에서 <사기꾼(역사이야기꾼들)>을 보았다.
‘파묘’의 모티브가 된 이완용 무덤 이야기였다.
큰별쌤이 전한 그의 어린 시절, 입양, 관직, 그리고 육영공원 유학까지.
그는 나라의 돈으로 공부한 ‘조선의 엘리트’였다.
그런데 큰별쌤 마지막 멘트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조선은 돈을 들여 똑똑한 괴물 이완용을 키웠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어떤가. 단군 이래 가장 많은 교육비를 쓰는 우리는 혹시 함께 살아갈 줄 모르는 ‘똑똑한 괴물’을 스스로 길러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이어진 말.
정약용 선생은 말씀하셨다.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가치가 드러난다.’ 어떻게 살았고, 어떤 태도로 마지막을 맞이했는가. 그것이 역사가 기억할 이름이 된다.
순간, 화면이 멈춘 듯했다.
나는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면서 정말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을까. 가르치고 있었다 자부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게 되자 조급해졌다. 학원 수강, 엄마랑 15분 수학공부, 수행평가 준비~~
참 아닌 척 그런 척
‘잘한다’, ‘열심히 해라’ 말은 자주 했지만,
‘함께 살아가는 힘’에 대해서는 얼마나 이야기했을까.
나도 일하는 엄마다.
하루를 버티며 아이의 공부를 챙기고, 밥상을 차리고, 또 일하러 나간다.
그 속에서 가끔은 잊는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임을.
오늘은 마음이 조용해졌다.
나는 다짐한다.
아이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 줘야지.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엄마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