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이다. “딩동”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양파 즙 공장에서 맡겨놓은 양파 즙이 완성됐다고 찾아가라는 문자이다. 남편은 운전을 하며 양파공장을 향해 지름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농기계를 위한 넓은 농로가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달리고 있는데, 우측 농로에서 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겠지 하고, 추호도 의심을 갖질 않았다. 순간이다. 쾅쾅쾅휘~이잉~ 쾅! 교통사고가 났다. 쌍방 차는 앞부분이 심하게 망가졌다. 얼마 후 경찰차가 오고 119 구급대가 나타났다. “괜찮으신가요? 괜찮으신가요? 다행히 의식은 있었다.
ㅇㅇ병원이라고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5인실에 입원했다. 내 몸을 받쳐 줄 침대는 입원실 문 쪽 벽에 붙여져 있었다. 똑같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들은 통증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운 모습들이다. 마당에 풀을 뽑다가 허리가 골절되어 누워계신 86세 여자어르신, 비 온 뒤 마을회관 앞에서 진흙에 발이 미끄러져 허리가 골절이 되신 90세 여자 어르신, 바지락 양식장에서 어업을 하다가 발이 미끄러져 대퇴골이 골절되신 70세 어르신, 작업장에서 무거운 짐을 운반하다 허리를 다친 50대 아줌마, 그리고 교통사고로 갈비뼈 3개에 금이 간 내가 이곳 병실에 있다.
86세 어르신은 입원한 날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고 으음 아이고” 이 신음소리는 진통제를 맞고서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옆쪽 90세 어르신은 약이 받질 않아 저녁 식사를 앞에 놓고 계속 구역질을 하셨다.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건너편 70세 어르신은 화장실 출입이 어려워 침대 밑에 플라스틱 바케스를 놓고 거기에다 소변을 받아냈다. 병실 안의 열악한 분위기에 아픈 몸은 더욱 지쳐만 간다. 혈관이 뚜렷하지 않아 하루 두 번 손등에다 맞는 주삿바늘은 너무 아파서 손등을 만지질 못할 지경이었다. 일주일 동안은 사고의 후유증으로 밤에 잠을 설쳤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조금씩 수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병상에 누워 계신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지난 과거의 우리 엄마의 모습이었고,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려왔다. 침대를 내려오기도, 신발을 신는 것도, 몸은 뜻대로 되지 않아 몹시 불편해 보이는 고장 난 몸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도하고, 도움을 받으면 미안해하시면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곁에 있지만, 자식은 부모가 아프면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 곁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자식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잠깐 얼굴만 보고 “엄마 갈게”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병실을 떠나지만, 헝클어진 백발의 노모는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것을 몹시 불편해하시면서 “난 괜찮다. 어서 가거라.” 떠나는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촉촉한 눈으로 배웅을 한다.
우리 엄마도 살아계실 적에 화장실에서 넘어지셔서 다리뼈가 부러졌다. 수술 후 대소변을 받아야 하는 힘든 상황도 겪으셨다. 다른 가족들은 돌아가며 엄마를 위해 간호를 했지만, 딸인 나는 직장에 얽매여 병간호를 해드리지 못했었다. 얼마 후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서 잠깐 모신 적은 있으나…….( ‘그걸 자랑이라고 하니? ’ ) 이런 마음이 들어 부끄럽고 죄송하다. 그때의 사정을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한없이 속상하고 슬프기만 하다. 중국 초(楚) 나라에 고어라는 효자는 어버이가 돌아가시자 이런 말을 했단다. “나무는 조용히 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춰주질 않고, 자식은 봉양을 하려 했지만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네.” 부모 살아계실 때에 잘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입원한 지 3주째로 접어들었다. 답답함이 마음을 짓누른다. 다가오는 토요일 퇴원을 앞두고 어서 집으로 가고픈 마음은 유년시절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이다. 역시 갇힌 곳보다는 자유가 좋다. 누구든 병실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옆에 누워계신 90세 어르신도 “나도 집에 가고 싶다. 이제 안 아파”하시는데 아직 허리뼈가 문제로 남는다. 주치의 선생님 말씀은 2,3달을 보시는데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드디어 내일이면 집에 간다는 금요일 밤이 너무도 행복하다. 먹기 싫은 병원 밥은 이제안녕이고, 그리운 집 밥이 떠오를 때면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토요일 퇴원 수속을 마치고 천국 같은 집으로 돌아왔다. 교통사고로 놀라고, 아파서 힘들었고, 병원 밥이 먹기 싫었고, 20일간의 시간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일상을 살고 온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