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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희 Sep 10. 2023

우물과 버드나무


우물과 버드나무


우리 마을은 이름부터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예로부터 불리는 이름은 선돌이고 한자로 보자면 입석리(立石里)이다. 마을이 다시 상하로 나뉘어 상 입석과 하 입석으로 불린다. 상 입석(웃 선돌) 마을뒤편에 바위하나가 서있는데 장자 못 설화가 담겨있는 선돌이다. 설화에서 비롯된 이름을 따와 선돌이라 칭하고 지금까지 마을 이름이 웃 선돌이라 불러지고 있으며 내가 사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중앙에는 500 백 년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있다. 또 우물 옆으로는 몇 백 년 세월의 무게를 지닌 버드나무 한 그루와, 그루터기로 남아있는 또 한그루의 나무가 그 연수를 자랑이나 하듯 당당히 서있다.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자면 원래는 세 그루였지만 우물 옆으로 길이 나면서 한 그루는 사라졌다고 한다.


 이 우물은 100 가호가 넘는 세대를 책임지는 식수원이었다. 한 세대의 인원을 어림잡아도 6人에서 10人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낌없이 물을 내어주며 그 위력을 충분히 발휘했던 그때의 우물이 아직도 남아있어 역사의 한 부분을 실감케 한다.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두레박과 물 지게, 물동이의 역할은 우물을 퍼서 올리고 이고 지고 나르는 데 사용되는 운송수단이었다고 한다. 우물을 기점으로 마을 끝과 꼭대기에 살았던 주민들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그 시절에 겪었을 몸의 노역(努役)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했다. 이 마을 꼭대기에 자리 잡은 어떤 집은 머슴이 물지게로 물을 운반했었단다. 이 집 여주인은 남자와의 면대 면을 피하는 게 예의라서 갓 떠온 냉수 한 사발을 부뚜막에 떠놓고 노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며 얼른 자리를 피해 주었다고 한다.

 


옛날 우물가에는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앞 세대들과 함께 땅에 묻혀 잠들어있다. 남녀가 유별했던 시절, 주로 물지게는 남정네의 몫이 되었고 물동이는 아낙들만의 도구였다. 낮 시간에는 더위를 피하여 시원한 버드나무그늘 아래서 시원한 냉수 한 사발로 더위를 식혔을 터고, 이런저런 이야기의 꽃이 피어나며 정감이 깊게 묻어나는 장소였지 싶다. 이 마을에 시집와서 팔순이 되신 어르신의 말씀은 사람들이 우물가에 와글와글 몇 십 명씩 물을 길어가기 위해 복작거렸다고 하셨다. 그럼 이 많은 마을 주민이 김장철에는 어떻게 하셨을까 궁금해서 여쭤봤더니 모두가 잠든 달밤을 이용해 우물에서 배추를 씻어갔다고 한다.



모두가 잠들어 쉬고 있는 밤, 적막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물은 마을 주민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물을 모아뒀다. 우물에 비쳤던 수많은 마을 주민들의 얼굴도, 바람과 함께 살포시 내려앉은 몇 개의 버드나무 이파리들도, 그리고 환한 달밤에 둥근 달님도, 별밤에는 별님들도, 우물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이다. 곧 우물은 마을 전체를 품고 아낌없이 내어주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마을의 귀한 존재 우물과 버드나무는 마을 주민을 향해 다시 기억해 주기를 호소하며 기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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