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장에 가는 날

by 김숙희


순창 장에 가는 날


김숙희


그동안 미루어왔던 순창 나들이를 가는 날이다. 아침이 여느 때와 다르게 매우 부산스럽다. 여름이 여름답게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시원한 모자를 준비하고, 얼굴과 팔에는 썬 크림을 듬뿍 발라주었다. 아이스박스에도 얼음 팩과 물도 챙겨 넣었다. 준비가 다 된 것 같다. 자동차 시동을 거는 소리와 함께 C, D에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웅장한 선율을 내보낸다. ‘고향의 봄’과 ‘별’이란 곡을 들으며 뻥 뚫린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각박한 세상에 지친 마음은 오뉴월 눈 녹 듯,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아름다운 음악에 심취되어간다.

차창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마음을 유혹한다. 내 마음도 파란 하늘 흰 구름처럼 그랬으면 하고, 하늘을 향해 부러움을 날려본다. 예쁜 하늘을 보니 상상의 나래가 끝없이 펼쳐진다. 두둥실 떠있는 흰 구름을 타고 어디든지 날아가고 싶고, 구름을 모아 포근한 이불솜을 만들어 그 위에 누워보고도 싶다. 그리고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에 막대를 살짝 끼워, 귀여운 우리 아가들, 진이, 율이, 조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다.

서해안 도로를 달리다 고창, 담양 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도로를 가운데 두고 가로수는 진녹색으로 한창 물들어 간다. 수박으로 이름난 고창을 지나는 동안 밭고랑에는 동글동글 큼직한 수박들이 여름과 함께 한창 익어간다. 얼마를 지나자 담양 고을 청청한 대나무들이 고장의 자태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대나무 이파리들의 살랑거린 귀여운 손짓에 멈칫하여, 담양을 들러보고 갈까 하는 충동이 살짝 들기도 하였다.

녹색으로 뒤덮인 굴곡진 산자락을 뒤로하고, 자동차는 순창을 향해 설렘을 싣고 쉬지 않고 달려간다. 가로수로 심어놓은 배롱나무 빨간 꽃이 수줍은 듯, 뽐내는 듯, 예쁘게 피어 환영한다. 얼마를 달려왔을까. 드디어 순창 톨게이트가 눈앞에 다가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읍으로 들어갔다. 순창 읍의 거리와는 아주 가까웠다. 읍에 들어서니 우뚝 솟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순창 읍에 도착과 함께 마음이 설렘으로 솟구쳤다.


오늘은 순창 장이 서는 날이다. 1과 6으로 숫자를 찾아 열리는 오일장이다. 혹여 가는 날이 장날이었나 할 수 있겠지만, 미리 장 구경을 계획하고 이곳에 왔다. 멀리 보이는 알록달록한 파라솔들이 장날의 분위기를 한층 더 띄워준다. 들뜬 마음도 잠시, 장날 하면 온 장안이 들썩거릴 것 같았는데, 너무 한산하여 들뜬 마음이 푹 갈아 앉았다. 여기서도 심각한 코로나의 여파를 실감할 수가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자 족발 집에서 퍼져 나오는 향신료가 후각을 자극한다. 사장님은 온몸을 땀으로 적셔가며 펄펄 끓는 솥에서 푹 고아진 족발을 계속 건져내고 있다. 정성이 스며든 족발 맛이 손님에게 큰 만족을 줄 것 같다. 육식을 좋아하지 않은 탓에 눈으로만 스캔하고 그냥 지나쳤다.


장 구경을 하는 동안 마음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동화가 된다. 순수한 서민들이 사는 모습 중 하나로 정겨운 일상이 친화적으로 다가왔다. 여름 과일들의 향기가 배어 있는 가게에 이르자 색깔들의 화려함이 눈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입안은 침이 고여 온다. 참외 한쪽을 베어 맛보기를 주는 사장님 상술에 슬며시 빠져 들어 살까 말까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장 중앙 우측 골목을 들어서니 00 유과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밖은 34도의 용광로 같은 열기다. 살아있는 사물들을 뜨거운 열기로 집어삼킬 기세이다.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마솥에서 유과를 제조하는 열감이 더해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사장님의 얼굴은 혹독한 삶의 현장을 그대로 느끼게 하였다. 유과를 사러 들어왔다고 하니, 한 봉지를 푹 뜯어 맛보기로 내민다. 값을 따지자면 몇 천원이 되고, 후한 인심은 아직 살아있어 마음이 흐뭇해졌다. 두 봉지만 살까 하다가 인심 좋은 사장님 덕분에 두 봉지를 더 사게 되었다.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 안에 유과가 한 아름이다.


장 끄트머리를 돌아 나와, 황도를 파는 곳에 걸음을 멈췄다. 과수원에서 직접 따온 황도의 빛깔이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형태로 눈길을 유혹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지갑을 열었다. 성경에 나온 하화도 이런 유혹에 넘어졌다지. 여러 무더기를 담아 놓고 한 무더기에 값은 일 만원이란다. 이 만원 어치를 사니 덤으로 세 개를 더 받았다. 아주머니는 먹어보고 맛있으면 다음 장에 또 사러 오라고 한다.


몇 걸음을 더 지나자 지리산 남원고을에서 왔다는 꿀이 있었다. 살 의향이 있어 값을 물어봤다. 시중 가격보다 싼 가격이라 맛을 보고 한 병을 구입했다. 아주머니는 명함을 주며 재구매를 부탁했다. 장날마다 나오니 믿고 먹으라고 했다. 꿀과 아주머니의 말을 믿어본다.


장입 구로 되돌아 나왔다. 자리를 길게 잡은 곳에는 제과 제빵이 펼쳐져있었다. 7개 만원이다. 적극적으로 다가와 빵을 팔려는 사장님의 말에는 간절함이 묻어 나온다. 그래서 팔아준다는 마음으로 빵을 샀다. 사장님은 빵 한 개를 더 주면서 “일부러 사주시네요. 감사합니다.” 하고 웃음 띤 얼굴로 인사한다.


장을 한 바퀴 돌아봤다. 점심때가 돼서 그런지 시장기가 든다. 저잣거리에서 먹는 음식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생각난 게 바로 국밥이다. 그래서 2대째 내려왔다는 순댓국밥집으로 들어갔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먹음직한 순댓국이 내 앞에 놓였다. 건더기가 듬뿍 들어있어 넘칠 듯 말 듯 후한 인심이다. 땀을 닦아가며 맛있게 먹었다. 순창 장을 돌아보며 사람 사는 냄새를 진하게 느꼈다. 전통시장의 인심은 뚝배기에 후한 정을 말아 놓은 듯, 뿌듯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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