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정류장 오늘은 읍에 볼일이 있어 가는 날이다. 버스가 오는 시간에 맞춰 10분 정도 걸리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황금색 시골버스가 논밭을 가르며 달려온다. 50분에 한 대씩 오기 때문에 놓치면 그만큼 기다리는 벌이 따라온다. 요금은 어른이 1,000원 학생은 100원이다. 학생요금이 믿어지지 않아 다시 확인해도 틀림없이 100원이 맞다.
버스에 올라타자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 방에 배어 있던 퀴퀴한 냄새가 난다. 아침시간 버스는 어르신들이 많이 타기 때문에 빈자리는 거의 없다. 읍으로 가는 정류장마다 꺾어진 기역자 허리 모양의 어르신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평생에 허리 한번 못 펴고 땅 바라기로 사셨으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버스가 멈추자 어르신들은 힘겹게 버스에 오르신다. 도시 같으면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저상버스가 있는데, 여기에도 그런 편리성이 더욱 필요해진다. 기사님은 몸이 불편하신 승객들을 친절히 모신다. 느린 걸음으로 자리에 착석하면 그때 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버스 안은 여기저기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소리에 정감이 묻어 나온다. 귀가 어두워서인지 목소리만큼은 확성기를 단 듯하다.
“고추는 얼메나 심었소?” “잉 쬐께심었네잉 사백 포기”
“마늘 양파는 다 캤는가잉?” “모래 비온다는디 내일이나 캐야것구만”
대화 내용은 한결같은 농사이야기고, 서로에게 농사가 잘 됐으면 하고 바란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묻어나는 정은 이웃사촌이 분명하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입담이 좋은 어느 어르신은 옆집, 앞짚, 뒷집 온 마을을 입으로 순회하며 뉴스를 전한다. 이러다 보면 버스는 심심찮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목적지는 읍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각각이 아닌 같은 일상을 사는 공동체적인 삶을 그들에게서 엿본다.
버스는 달리다 어느 마을 정류장에 정차를 하였다. 차가 막 출발해 가는데 차 안에 계신 어르신들이 큰소리로 차를 세우라고 하신다. 버스는 가던 길을 멈췄다. 어떤 중년 아줌마가 한참이나 떨어진 길인데 헐레벌떡 차를 향해 뛰어왔다. 이 아줌마는 놓칠 뻔한 차를 타게 됐으니 참 다행이었다. 여기저기를 향해 주억거리며 가쁜 숨을 내몰아 쉬었다. 차 안에 어르신들의 마음과 버스 기사님의 친절한 마음이 큰 감동이 된다. 이웃을 향한 선한 사마리아인을 볼 수 있게 됐고, 그 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도로포장이 잘 된 길을 달려 버스는 읍에 잘 도착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버스에서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저상버스를 향한 마음이 또다시 간절해진다. 이제 병원, 한의원, 시장, 은행, 등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마을을 향해 들어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모일 것이다.
도시에 살던 때를 기억해 본다. 약속이 있어 시내에 갈 일이 생겼다. 집에서 5분 거리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전광판에는 타고 갈 버스가 곧 도착이라고 뜬다. 버스들이 전용도로 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류장에 들어선다. 동작을 느리게 하면 차를 놓치기 때문에 뛰어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버스를 타려고 몰려가 줄을 서고. 앞사람 뒤에 바짝 붙어 있다.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었다. 삑 소리와 함께 “감사합니다.”하고 감정 없는 기계음 소리가 맞이한다. 버스 안은 차 기름 냄새와 젊은이들의 화장품 냄새가 서로 뒤섞여 도시 향이 진하게 배어있다. 버스 안 사람들은 서로가 생면부지(生面不知)이다. 그래서 전혀 궁금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못 느낀다. 목적지에 내릴 때까지 손에 든 핸드폰만이 그들에게 관심대상이고, 무감정인 이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마다 타고 내린다. 문을 닫고 버스는 출발하려고 한다. 어느 아저씨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오지만, 승객들은 무관심으로 차창만 바라 볼뿐이다. 손으로 차를 쿵쿵 때려도 절대 멈춰주지 않고 냉정히 떠난다. 차가운 도시는 입을 다문 채 마음까지도 굳게 닫혀있다. 버스를 올라탈 때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는 모두가 각각이다. 버스는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시간에 쫓겨 바쁘게 떠난다.
읍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30분 넘게 기다리다가,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자 몸을 실었다. 승객은 열 명 안팎인 것 같다. 가는 동안 바쁠 것 없는 여유로움이 깊숙이 찾아든다. 차창밖에는 온 산이 연녹색이다. 시골버스는 자연을 함께 태우고 가는 듯하다. 여러 마을을 거쳐 굽이도는 길을 따라 몸도 함께 리듬을 탄다. 내릴 땐 서두르지 않아도, 기사님 얼굴엔 재촉의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익숙한 마을이 눈에 들어와 벨을 눌렀다. 정류장에 내려놓고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이 눈에서 멀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