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따뜻한 봄날, 마을길을 따라 못 보던 붉은 꽃 묘목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심어졌다. 이 꽃 이름은 100일 동안 볼 수 있다 하여, 백일홍이라 하고 또 다른 이름은 배롱나무라고도 부른다.
다음 해 1월 매서운 한파가 한반도를 강타했었다. 우리 마을도 폭설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따뜻한 남쪽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시베리아의 겨울이었다. 지난봄에 심어놓은 단감나무 두 그루가 추위를 못 이겨 얼어 죽고 말았다. 역시나 가로수 배롱나무도 몇 그루를 제외하고는 메마른 가지로만 남겨졌다. 모든 게 꽁꽁··· 동장군에게 굴복당하고 말았다.
그 힘든 시련을 딛고 배롱나무는 봄을 맞았다. 뼈가 시린 겨울을 이겨내고 죽은 것처럼 보였던 원가지 옆에 살아있는 잔가지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소생의 환희다. 그 가지는 조금씩 자라더니 올해는 예쁜 꽃을 피웠다. 폭염경보! 말만 들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의 포승줄을 끊고 또 하나의 시련을 극복하며 배롱나무는 100일을 채워나가고 있다.
배롱나무에서 인생을 배운다. 강한 시련 앞에 잎조차 피울 수 없는 현실이 직면해 있을지라도, 시련으로 인해 인내와 겸손을 배우고, 때가 되면 소생의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과 의지를 엿볼 수가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딸이 있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는 몇 가지 장애를 뛰어넘어야 했다. 어린아이들을 유치원에 등원시켜야 하고, 때로는 아이들이 아프면 꼼짝없이 아이들 곁에 있어야 했다. 시험 준비에 올인해도 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늦은 나이와 주부로서 시험을 대비하기에는 버거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올해 시험 결과는 아쉽게도 3점이 모자랐다. 내년을 바라보고 다시 머리띠를 질끈 묶었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가 대단하게 여겨진다.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기를 기도하며 응원한다. 그리고 큰 시련을 이겨낸 배롱나무처럼 인내 뒤에 숨어있는 승리의 깃발을 향해 정진하길 바란다.
살아 돌아온 배롱나무를 보며 다시 볼 수 있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다른 어느 곳에 화려하게 피어있는 것들보다 그 존재가 더 사랑스러웠다. 죽었다고 안타까워했는데, 생명의 꽃을 피우며 회생한 배롱나무에게 애틋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