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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n 27. 2024

선물로 뭐가 좋겠어?

사랑에 대하여 5: 마무리하며

  어떤 설렘이나 갑작스러운 기쁨도 주진 못하겠지만 가장 효율적인 기쁨은 보장되었다는 믿음 하에 질문을 던진다. 분명 애정을 가진 이들에게 건넨 말이지만 보통 돌아오는 대답은 손에 꼽는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깊어지는 고민은 금세 차오른 생각들에 밀려 자리를 비킨다. 그렇게 사람들을 챙기지 않은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런 하루는 무던하면서도 무심하고, 회색 빛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엔 회색 빛인 세상이 낯설어 상담을 받았고 그때에 들은 조언은 자존감으로 가득 찬 내담자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스스로를 사랑해 주세요”. “이보다 더요? 그리고 그 조언은 너무 추상적이라 어려운데요?”라는 말을 뱉는 순간 그렇지 않아도 빽빽한 시간표에 상담 1회 연장이라는 부담을 줄게 분명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22년 생에 사랑의 존재는 당연했다. 절대적이고 규범적인 전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효’를 배웠고,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자라 만물을 사랑하는 법(심지어는 원수까지도)을 배웠다. 그런데 자꾸만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분명 존재하긴 하는데 대체 그게 어디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형체 없는 그것의 실체는 확실하나 그를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뜻밖의 고민을 던져준 ‘형태소’에서 사랑에 대한 담론을 전개해 나갔다. 영원하게 빛바래지 않을 사랑은 객체가 아니라 대상에게 주는 것임을 정의했고, 아무리 만연해도 결국 용기 있는 사람의 것이라 정리했다. 오랜 시간을 쏟아 부운 생각들 사이에 ‘나’는 없었다. ‘사랑은 영원해’ 글마다 외치는 사랑의 주체가 정작 어떻게 사랑을 줄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른다. 아마 사랑낙관주의 단체원이라면 참여율 0%로 내 이름은 벌써 제명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뚜렷했던 주장이 점점 파리해져 갔다. 이대로 생각을 이어나가다가는 끝내 사랑을 부정하게 되진 않을까 우려가 됐다. 단지 호르몬의 농간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회색빛 세상을 굳혀나가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고민이 답도 없이 깊어져갔다. 논리적인 근거를 대지 못하고 주관적인 감상에 의거해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허상이고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넘기기에는 대놓고 자리 잡고 있다. 난 여전히 사랑을 앞에 두고 거울을 보면 고장 난 로봇 같고, 드라마, 소설, 노래 가사에 영락없이 마음이 동하니 말이다. 밥 먹다 말고 생뚱맞은 고민에 머리를 쥐어 싸매니 1분 전 만 해도 연애에는 관심 없다고 말한 친구가 슬쩍 답을 해주었다. “난 사랑이라는 거, 인류의 존속을 목적으로 발전하게 된 긍정적인 행위라고 생각해. 생존하기에 적합할만한 행위를 서로에게 해주는 거지. 그러니까 사랑은 결국 내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 욕구를 채우고 싶은 만큼 타인에게 해주는 거야. 선물 줄 때랑 비슷해. 무슨 선물을 줘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 사람이 내게 준 걸 봐. 그게 받고 싶은 것일 수 있으니까.”


 고뇌의 실마리를 드디어 찾은 것만 같아 친구의 말도 끊고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물론 각자의 사랑관이 다르니 내가 준 선물이 상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차치하고 '준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어 해답지 서문을 휘갈긴다.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반응도 주고받아야 만 생기는 현상이므로.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라 믿은 나의 사랑이 아직 누군가에게 가 닿지 않아 영롱한 빛을 잃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지구 반 바퀴를 돌아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인지는 해봐야 알 일이다.


 그래, 줘야지. 그런데 뭘? ‘내가 받고 싶은 것’부터가 난제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주는 것” 관계에서의 바이블 같은 태도를 ‘나’에게 적용시켜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해답을 찾았는데 아주 어렵고 오래 걸릴 게 분명한 전교 1등의 공부조언을 받은 기분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그 지점부터 역으로 따라가서라도, 결국 난제의 답을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또 도진다. 하다 보면 그제야 혀 끝에 막혀있던 상담선생님의 조언이 내 몸에 맞춰 녹아 혈관을 타고 흘러가겠지. 그렇게 사랑을 주는 법과 받는 법도 마스터한 사랑 가득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당찬 포부가 있으니 고등학교 1학년의 마음으로 시작하면 될 일이다.



by.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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