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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May 19. 2022

두 폭의 캔버스

5月 : 오월에 꾸는 꿈

  1. 첫 번째 추상화     


  아빠의 꿈은 나에게 추상화로 다가왔다. 아빠는 미대를 나와서 동양화, 그중에서도 인물화를 전공했다. 원래는 디자인을 전공했으나, 동양화로 바꾸었다고 했다. 아빠는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는 미술교육 쪽으로 대학원을 진학했다. 그러나 나는 아빠의 그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아빠가 붓을 잡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본 적이 없었으므로. 혹은 있다고 하더라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아빠가 동양화나 인물화, 미술교육 등 그림에 관련된 것들을 배우고 꿈꿔 왔다는 것을 손길이 닿은 그림으로 감각하기보다는 말로써 전해 듣곤 했다. 나는 그저 미대나 동양화, 인물화 같은 단어로 그림을 그렸던, 그리고 화폭을 채워 나가길 바라는 아빠의 모습을 막연하게나마 상상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어떤 그림을 그렸을지, 흰 캔버스 위에 어떤 물감을 덧칠했는지는 도저히 감각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어떠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아빠의 꿈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말들로만 전해져 왔다. 아빠는 미술과는 무관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아빠가 붓이나 펜을 쥐고 있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전에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을 때, 아빠는 집을 보여 주며 나머지 방 하나는 화실로 쓸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그때 들떠 있는 아빠의 모습에서 미술을 바라는 파토스를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스케치에도 다다르지 못한 구상 과정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비어 있는 방 안에 철제형 책상이 하나 놓여 있지만, 그 위에는 어떤 미술과 관련된 용품도 놓여 있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자 화실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던 방 내부는 옷을 걸어 놓는 행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림의 흔적이 드리우지 않은 방은 벽지의 회색빛처럼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으로는 옷방으로 쓰임새를 다하고 있는 방을 떠올리거나 그림을 그려야 한다거나 그리고 싶다던 아빠의 말이 문득 번져 오를 때마다 나는 왜 아빠의 꿈이 추상적인 구상에 남아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림이나 미술 같은 것들을 읊조리는 아빠의 모습을 돌이켜볼 때마다 나에게서 아빠의 꿈은 더욱더 흐릿한 형태를 지닌 추상화로 다가왔다. 아니, 어쩌면 추상화라고도 할 수 없이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아빠의 꿈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어느 날, 불현듯 아빠에게 그림을 그리고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흐릿하지만 그 방을 화실로 쓰고 있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미 한쪽 벽면을 이단식 행거로 가득 채워 놓은 방이 암시하듯이 아빠의 대답은 부정형이었다.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어서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낯빛은 여러 감정의 색깔이 뒤섞인 듯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어느 학교에 들어가 미술 강사를 할 수 있는 요건은 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미술과 무관한 이 직업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아빠의 말 또한 겹쳤다. 나는 그 이후로 아빠에게 그림을 그리고 있냐는 질문을 꺼낸 적이 없다.

  대신에 아빠는 입버릇처럼 퇴직하고 나서는 시골에 내려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 한적한 전원주택에서 화실을 두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은 이전에 아빠의 대학교 시절, 동양화와 인물화를 전공했다는 말보다는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추상화로만 다가왔던 아빠의 꿈이 스케치 작업에 들어간 것처럼 특정한 형태와 윤곽을 잡고 다가오게 되었다. 아빠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그 그림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흰 캔버스에 붓이 닿을 때마다 피어나는 선이 어떠한 형태를 자아낼지는 여전히 감각 불가능한 것이지만, 어느 전원주택 안에서 이젤 앞에 앉아 붓을 쥐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도무지 시간이 없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거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식으로 말할 때마다 짙은 회색의 빛깔이 드리우던 아빠의 얼굴은 캔버스 앞에서 어떻게 변할까. 나는 여전히 미술을 꿈꾸는 아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는 없지만, 아빠의 꿈이 구체화로 나아가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2. 두 번째 구체화     


  대개 그렇듯이 어렸을 때 나의 꿈은 추상화거나 낱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그림이 나오는 스케치북과 같았다. 어떠한 유전적 속성에 기댈 필요 없이 미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던 아빠의 밑에서 난 나도 그러한 재능의 싹 같은 것들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거나 혹은 내가 없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한 유치원 선생님이 나에게 미술을 시켜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빠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빠의 대답은 단호했다. 다른 것은 다 시키더라도 미술은 시키지 않겠다고. 그 말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듯이 나는 피아노 학원이나 태권도 학원 같은 교습소는 다니더라도 미술 학원은 그 근처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실시하는 미술 시간을 제외하고는 따로 붓이나 연필을 쥐어 보지도 않았다. 미술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으므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 또한 생길 리 만무했다. 스케치북에 미술이라는 그림을 그려 보기도 전에 나는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꿈을 생각하면 직업적인 요소만을 생각하고, 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과 연관 짓는 작업만을 반복했었다. 누구나 꿈꾸는 긍정적인 미래 같은 건 나의 몫이 아니었다. 꿈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과 결부되었을 뿐이다. 학교 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특별한 취미랄 것도 없는 나에게 모든 것은 흥미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빈 백지를 넘기는 일처럼 무료하기 짝이 없었고, 나는 그저 타자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만을 가지고 속기사라는 꿈을 도출해 내었다. 그러나 이 꿈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사소했다. 나는 글을 잘 쓰니 속기사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직업을 꿈꿔 보라고, 소설가나 작사가 같은 것을 진로로 삼는 것이 어떠냐는 담임 선생님의 말이 들려왔다. 그때 막연했던 소설이나 문학 같은 단어가 무언가 내적인 것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던 것만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잘 가지 않았던 도서관에 드나들며 몇 권의 책을 뒤적거리거나 산문이나 수필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일기 같은 글을 습작하곤 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문학은 구체적인 꿈으로 다가왔다. 이후로 문예창작이나 국어국문을 전공하면서 이는 고정적인 구체화로 다가왔다. 이 꿈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내뱉을 때 돌아오는 반대도 격렬했으나, 특히 고등학교 진학과 연관된 금전적인 문제가 이를 가로막았지만 끝내 아빠는 나의 편을 들어 주었다. 예술가적 기질은 유전되는 것 같다며, 미술이 아닌 다른 방향의 예술인 ‘문학’을 꿈꾸게 된 나를 보며 아빠는 말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소설과 산문으로 구체화되었으며,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는 시와 비평으로 확고한 방향성을 지니게 되었다. 잠시 문학을 이탈한 적도 있었으나, 다시 문학으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문학을 정말로 사랑하는 것 같아, 라는 말이 주위에서 끝없이 들려왔고, 나의 꿈은 결국 문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예언적인 믿음이 나를 단단하게 붙들었다. 어떻게든 문학과 맞닿아 있는 삶을 살자고, 스스로 선언에 가까운 말들을 되뇌곤 했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고통이나 번민이 나를 수런거리게 하더라도 다시 시집을 집어 들어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활자들을 더듬으며 마음을 다스리곤 하는 나의 모습이 나에게도 너무나 자명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언제 이 구체화가 뭉개질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겠지만.     



  0. 두 캔버스가 겹쳐질 때     


  명절에 고모네가 왔을  모여 여러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고등학교 전시회  출품한 작품에 관해서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고모가 이런 말을 꺼냈었다. 아빠의 그림도 굉장히 우중충하고 어두웠는데,  글도 그런  같다고. 둘의 스타일이 비슷한  같다고. 그런 말을 꺼냈을 , 나는 아빠의 그림이 어떤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지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아빠가 화폭에 무수히 그려냈던 선들은 내가 구사하는 어두운 언어들과 맞닿아 있구나. 내가 펜을 쥐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어떤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말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아빠도 붓을 쥐고 그러한 것들을 화폭으로 길어 올렸겠구나. 고모의 말에 아빠는 부정하지 않고 이내 수긍했었다. 나는 아빠가 몇십  동안 쥐었을  대신에 펜을 쥐고 있지만, 어떠한 예술을 꿈꾸는 기질이 전승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던  같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작품으로 구현된 분위기 같은 것들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아빠가 그린 그림을  적이 없고,  앞으로도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아빠의 꿈과 나의 꿈이 그려질 캔버스를 겹쳐보게 된다. 그리고  위에 그려질 그림은 과연 어떤 형태로 그려질지. 자꾸만 환하고도 캄캄한 앞을 내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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