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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May 19. 2022

평행하는 꿈

5月 : 오월에 꾸는 꿈

평행하는 꿈


휑한 목이 신경 쓰이는 날이었다. 쇄골을 만지작거리는 나를 보고 엄마가 어항을 눈짓했다. 어항 앞에 길게 늘어져 있는 목걸이를 눈짓했다.

“저거 차고 가라. 너랑 잘 어울릴 거야.”

그 목걸이는 엄마의 목에 항상 걸려 있었던 목걸이었다. 어떤 날인지에 따라 장신구가 종종 바뀌기는 했으나,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주 그 목걸이를 볼 수 있었다.

“엄마 목걸이 아니야?”

“응. 엄마가 이십 대 때 친구들이랑 맞춘 목걸이야.”

이래 봬도 십육 케이 금목걸이야.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돈을 꾸준히 조금씩 모아 칠공주끼리 맞춘 목걸이라고 그랬다. 그 목걸이를 내가 차도 돼? 생각보다 의미 있는 물건에 소심한 마음으로 물어보니, 엄마는 ‘그래. 어차피 안 찬 지도 오래됐고, 이제 너랑도 잘 어울리니 차라.’라고 대답했다.

목걸이를 찼다. 목걸이를 차고,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엄마와 목걸이를 생각했다. 옮겨 다니며 짐을 최소화로 하고, 또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과거의 물건들은 처분됐다. 현재와 근과거로 가득 찬 곳. 다시 말하면 가족이 되기 전의 추억이 사라진 곳. 그곳에서 엄마의 과거가 푹 절여진 물건을 받았다. 엄마의 과거를 찬 나. 나는 엄마와 닮았을까, 나는 20대의 엄마를 모르면서도 굉장히 친숙한 사람처럼 떠올렸다. 목걸이를 차고 나와 닮은 엄마, 엄마를 닮은 나. 갑자기 나는 가족이라는 게 무겁게 느껴졌다. 쿵. 쿵. 쿵. 어떠한 곳으로의 강력한 호출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요동쳤다.

누군가를 닮았다는 것. 그걸 뛰어넘는 건 연결되었다는 느낌.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의 외모를 닮았다. 엄마를 모르는 선생님이 우리 엄마를 처음 보고, 내 이름을 불렀을 정도로 엄마와 나는 닮았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닮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엄마와 나는 똑 닮았다고 그랬다. 가끔 엄마는 내가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 말할 때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사람들이 엄마를 닮았다고 할 때마다 당연하지. 누구 딸인데.라는 마음과 동시에, 닮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쑥 끼어들었다. 엄마가 나와 의견이 다를 때마다, 엄마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마다, 나는 엄마와 내가 닮지 않음을 티 내려고 무진장 애썼다. 나는 엄마가 아니야. 엄마는 내가 아니야. 우리는 다른 사람이야. 근데 그 목걸이를 찬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나를 닮았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20대의 우리는 연결되어있었다. 어떤 반발심도 들지 않았다. 유전. 사실 유전이라는 것보다는, 연결. 나는 언젠가의 엄마를 닮았으면서 동시에 언젠가의 아빠를 닮은 사람. 흘러간 시간 속 그들은 흘러가는 시간 속 나였다. 엄마가 나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엄마의 투영된 20대였을까?

엄마는 20대 때 많은 것들을 했다. 세무서에서 일하면서 비디오를 배웠다. 엄마는 세무서를 관두고, 제주도에 가서 비디오 촬영을 했다. 결혼식과 허니문 장소로 제주도가 인기 있던 시기였다. 엄마는 그들을 찍어줬다고 했다. 그 후에 엄마는 화장품 가게를 인수해서 옷 가게를 했다. 그때의 엄마는 겁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엄마는 일찍이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했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20대를 떠올리며 나의 20대를 겹쳐본다. 국문과에 가겠다고 홀로 한국에서 자취하며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 친구와 빈티지에 푹 빠져서 빈티지 사업을 하던 나. 실내 건축을 지원한 나. 하고 싶은 게 많은 나. 두려움이 없던 나의 20살 21살 22살 같은 것들. 멍 때리는 엄마의 모습.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 책을 꾸준히 좋아한 엄마. 그림을 좋아했다던 엄마. 그리고 나.

붙어있지 않음에도 닮아지는 것들이 있다. 파편처럼 남아 있는 어린 시절, 그리고 곁에 없는 현재. 코로나로 인해 보지 못한 지 2년 정도 됐다. 타지에 있는 아빠. 아빠가 곁에 없는 동안 나는 아빠를 느꼈다. 어느 순간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가족과 웃다가, 길을 걷다가, 어떤 것을 결정하거나 공부를 시작할 때, 나는 어슴푸레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이 변하고 주어진 책임들이 다양해지고 크고 작은 소속감,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부를 마주하면서 나는 변했는데, 변해가는 과정에서 나는 아빠를 떠올린다. 느슨하게 연결되었다고 생각했던 연의 끈이 형형하게 바닥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보는 기분. 나는 아빠와 연결되어있다.

영화 보는 것을 즐겼던 아빠. 도서관과 포장마차. 우직한 성미가 있는 아빠. 공무원을 준비하다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회사로 가게 된 아빠. 노래 흥얼거리기를 좋아하는 아빠. 어딘가 엉뚱하고 재미있는 아빠. 부지런한 아빠. 고갈비와 닭발을 좋아했던 20대의 아빠.

탯줄로 연결되지 않음. 임신했을 때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던 엄마. 육류보다 채소를 더 좋아한 엄마. 입맛이 뚝 떨어졌을 때 찬물에 밥을 말아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는 나. 육류보다 채소를 더 좋아하는 나. 탯줄로 연결됨. 멀리 떨어져 있고 집합이 희미한 아빠와 나. 그러나 나는 나로부터 아빠를 떠올린다.

그니까 어쩌면, 나는 엄마의 20대와 아빠의 20대를 꾸준히 마주한다. 생활하면서, 돌아보면서, 유전처럼 들어온 그들의 20대와 그것을 지반 삼아 내가 쌓아 올린 20대. 셋은 닮았고, 공존하고, 숨 쉰다. 나는 또 하나의 대표자로서, 숨 쉬는 생생한 족보로서 존재하는가? 나는 어쩌면 갱신의 결과물, 응축의 집합체로서 존재하는가? 어떤 날 우리는 시대가 다른 쌍둥이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나이의 서로였을까? 나는 그들을 갱신하고 여기에 서 있다. 물보다 진한 피라는 말이 새삼스레 와닿는다. 나는 부모를 닮았고, 연결됐고, 그렇기에 그들을 거울처럼 쳐다보고, 연민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또 외경스럽게 이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나에게 주는 애정과 말들이 차원을 뛰어넘은 소중함으로 느껴진다. 이것이 내가 떠올린 가족이라는 무게, 가족이라는 연결성, 그리고 가족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이다.





엄마와 아빠에게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내 모습을 돌아보고 일기를 적을 때마다 엄마와 아빠를 떠올려요. 엄마와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주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당신의 20대가 나와 닮았을까 고개를 기울기도 하고 조그만 확신으로부터 존재함의 의미를 찾기도 해요. 이 방법은 현재의 엄마 아빠를 이해하고, 공경하고, 또 귀하게 생각하게끔 만들어요. 엄마 아빠와 떨어지지 않을게요. 어떤 순간에도, 사실 지금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나는 엄마와 아빠를 닮고 당신의 습관을 닮고 열정을 닮고 공유하고, 연결되어있으니까요. 이 또한 번복될지 모르는 20대의 순간이더라도 나는 우리 가족의 연결성을 믿고, 우리가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고, 그러기에 멀리 떨어져 있는 아빠를 여전히 소중하게 그리워하고, 가까이 붙어있는 엄마를 소홀히 생각하지 않을게요. 항상 그립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고, 사랑합니다. 단순히 딸로서 하는 말이 아닌, 가족으로서 드리는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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