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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l 29. 2022

꿈으로부터

7月 꿈으로부터

 너, 기억하니?    


1999,

전 당신이 이사 오기 전 이 집에 살던 사람이에요. 사실은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남겨요. 기다리고 있는 연락이 있거든요. 혹시라도 제 앞으로 편지가 오면 아래의 주소로 보내주시겠어요? 꼭 부탁드릴게요.     


 시월애의 첫 장면이야. 99년도를 살아가는 은주가 빨간 우체통에 넣어둔 편지. 97년도를 살아가는 성현은 그렇게 은주를 만났잖아. ‘꿈으로부터’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나는 이 영화를 떠올렸어. 꿈은 보통 미래를 지칭하니까, 혹은 미래의 특성을 내포하잖아. 불확실한 희망. 불확실한 경고. 어쨌든 현실과 동떨어진, 단절된 어떤 미래. 적어도 난 그것을 꿈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 미래로부터 오는 편지라니. 꿈으로부터 오는 편지라니. 참 신기하지 않니? 보통 우리가 부쳤던 편지의 발신인은 미래였는데 말이야. 회고하기보다는 희망을 적어 내리는 게 더 쉬웠을지도 몰라, 어쩌면.     


 너는 너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니? 나는 나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어. 참 바람 많이 불던 밤, 공중에서 힘차게 불꽃을 터뜨리지 못하고 밀물처럼 흩어지던 불꽃놀이를 기억하니. 픽, 픽 잘못 깬 계란처럼 터지던 불꽃을 구경하며 바닷가에서 썼던 편지 말이야. 그리고 모든 것을 낭만으로 치환하기 시작한 무더운 날. 분홍색 노을이 운동장 너머 일렁이던 계절, 수학 선생님이 시켰던 졸업하기 전에 썼던 편지 말이야.      


2020,
J와 러시아 갔어? 갔으면 재미있었니.
여전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니. 나는 지금 바다야. 바다의 바람 실어 보낸다.
여전히 물을 몰고 다니니.
... 아직도 사랑을 하니.
2018,
나는 어느 토요일의 정오에, 졸업을 곧 앞둔 너에게 이 편지를 부친다.
(중략)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대학에 가야 해.
누군가를 비판하기 전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 (중략) 나는 너에게 과거이나, 인간은 본래 잘 까먹기 때문에 미래의 너에게 다시금 당부하는 바야. 우리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대. 그 사람과의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말이야... (중략) 여행을 많이 다니렴.     


두 번째 편지엔 50위안이 같이 동봉되어 있었어. 쪽지엔 ‘편지를 읽은 후, 가치 있게 사용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지. 그때 뭘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어쨌든 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는 미래를 뭉뚱그려 희망하거나, 당부하는 말로 기록되어 있더라. 만약 네가 너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면, 너는 어떻게 너의 미래와 닿아 있니?      


...... 그렇다면 과거의 너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니? 재미있는 건, 과거는 단절된 채로 고여 있지 않다는 점 같애. 고여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기억도 결국엔 현재로 흘러들어와 현재의 수면 위에 둥둥 뜨게 되니까. 시제로 표현한다면 현재 진행형인 것들을 반추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달까... 그렇다면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들은 어떤 모습일까. 단절된, 광각 기능을 켠 것처럼 저 멀리 보이는 근미래와 꿈을 뒤집어보면 어떨까.      


거슬러 올라가, 그 가을.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선생님은 나에게 과거를 마주하는 연습을 시켰다. 내가 안고 있는 불안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나는 그 뒤로 자주 어린 나를 쳐다봤었어.    

  

1. 세 번째 서랍 안에는 미니 손전등이 있었어요. 어디서 주웠는지 샀는지 모를 플라스틱 손전등이었어요. 촌스러운 연두색과 코발트블루색 테를 두른 손전등이었어요. 자야 할 시간에 손전등을 들고 침대로 가서 베개 밑에 숨겨둔 해리포터 시리즈 책을 펼쳐 읽었어요. 아무도 내가 그 시간에 깨어 있는지 몰랐을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즈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유물이나 딸린 것으로 존재하지 않고,... (중략)     
2. 평상시엔 창고 깊숙이 숨겨두고요. 그러다 가끔 걔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또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중략) 하지만 걔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또 다른 나라면, 그러니까 내가 걔에게 형체를 부여한다면, 어쨌든 걔도 저니까 가둬두면 안 되겠죠. 데리고 몸을 닦아주고, 손잡고 산책도 해야겠지요. 방치하고 없는 셈 친다고 가벼운 존재가 되는 게 아니니까요.

 

매 이야기 끝에는 나와 대화를 해야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어. 나는 과거를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큰 돌로 막아뒀는데 결국엔 미봉책이었던 거야. 겪어온 것들은 계속 그 사이로 흐르고 흘러 현재로 넘실거리고 있더라. 나는 벨 수 없는 것들을 베고 살았던 거지. 하하. 그런다고 과거와 현재가 똑 떨어지는 게 아닌데 말이야. 그래서였을까 봐, 과거와 현재의 흐름을 끊어버릴 수 없듯이 우리가 줄곧 재창해 온 가깝지만 먼 미래를 다시 재고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낀 건.      


시월애의 그 장면을 기억하니. 은주와 성현이 2년이라는 시차를 뛰어넘어 만나기로 한 날, 결국 은주는 성현을 만나지 못했던 장면.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혼자 걸었던 그 장면 말이야. 은주는 성현에게 미래고, 성현은 은주에게 과거라서 만나지 못했던 거였을까, 생각했던 장면. 그러나 은주는 성현에게 편지를 쓰고 결국 은주와 성현은 같은 시간 선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되잖아.     


미래로부터 오는 편지는 단절된 그 둘의 시간 선을 연결해 주었다. 그러나 그 미래란 은주에겐 현재였다. 즉, 성현이 바라보는 미래는, 은주가 바라보는 현재였고, 은주가 바라보는 과거는, 성현에게 현재였다. 사실 그들이 편지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그저 한 선상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해도 될까.     


그렇다면 꿈으로부터 보내온 편지는 너머의 것이 아님을. 내가 더 어렸던 나에게 했던 말이 그러하듯이, 결국엔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라고 말해도 될까. 그러니 꿈은 흘러가는 거라고, 현재는 과거의 꿈이었고, 또 과거는 먼 과거의 꿈이었을지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주하고 도달할 꿈도 밀물과 썰물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그 중심에 서 있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곧이어 미래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을 것이라고. 5월부터 다룬 우리의 꿈은 ‘언젠간’, ‘먼’, ‘이상’이 아니라 성큼성큼 진흙을 삼키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현재를 사는 것은 미래를 살아가는 것과 동의어라고. 나는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의 주저하는 미래와 자꾸만 흐려지는 것 같은 꿈을 두려워하지 마. 이미 우린 그것들 속으로 발을 깊숙이 넣어 걷고 있으며, 우리가 찍어내는 것들은 길이 되고 있을 테니까.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너의 꿈으로부터, 너의 미래로부터,

너의 현재와 과거로부터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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