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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l 29. 2022

다시, 꿈으로부터

7月 꿈으로부터

  나는 부유하는 꿈으로부터 빠져나와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도식 속, 미래라는 물성을 흰 빛으로 감각하며 나의 이마 위에 조용히 내려앉을 빛을 떠올렸다. 어둠마저 하얗게 지워 버리고, 어떤 색이 차오를지 알 수 없는 그 빛을 막연히 가늠했다. 흰 빛이 내 손목을 붙들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을 때, 나는 두 폭의 캔버스를 마주했다. 지나온 풍경들을 뒤로 하고 여러 그림들이 겹겹이 쌓일 아빠의 캔버스와 어떤 것이 그려질지 모르는 나의 새하얀 캔버스를 바라보았다.

  캔버스 앞에 우두커니 앉아 색색의 물감을 짜 놓고 붓을 쥐고 있었다. 어떤 것을 그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구상해 놓았던 꿈을 채 완성하지 못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꿈과 현실은 언제나 손바닥 뒤집듯이 불시에 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꿈이 어렴풋이 고개를 들 때면 기이한 불안감을 먹고 자란 현실의 그림자가 돋아났다. 현실이라는 막역한 그늘을 뒤집어쓰고, 나는 어쩌면 내가 꿈의 필멸자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 앞에서 무릎 꿇은 필멸자의 포즈는 과거의 내가 무수히 행했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으므로.

  이 모든 꿈과 현실의 낙차를 견뎌 왔던 나는 다시 현실에 놓여 있다. 내가 마주했던 꿈의 장면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그 어렴풋한 꿈의 조각만을 손에 쥔 채 여기 서 있다. 이것들을 붙들고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모든 것은 0으로 수렴됐다. 지금-여기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무언가 시작될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만을 느끼며 나는 서 있다. 완전한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로 발을 내딛어야 할까. 다가오는 흰 빛의 미래와 한 폭의 캔버스 같은 꿈, 그리고 자꾸만 내 안에서 자라나는 필멸자들의 잔상 속에서 방황하는 나. 아무것도 틔워낼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 속에서 정말 내가 원하는 꿈은 무엇일까? 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지탱해 나가야 할까?


           

- 완전한 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빌리 엘리어트>     


  무작정 돌진하듯 앞으로 내달리기 이전에, 꿈을 이룬 자들의 이야기를 되짚어 본다. 그 중, 발레리노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돌아본다. 이 영화의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발레리노’라는 꿈을 발견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엄한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조력자 윌킨슨 선생님을 만나 그를 따른다. 그리고 심하게 반대했던 아버지 또한 빌리 엘리어트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다. 결국 빌리 엘리어트는 로얄 발레 스쿨에 합격하게 되고, 마침내 로얄 발레단의 유명한 발레리노로 발돋움한다. 자신의 꿈을 완전히 이뤄낸 것이다. 이 아름다운 꿈의 완성도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가난한 성장 배경을 지닌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발견함 -> 외부(아버지의 반대 등)에 반대에 부딪혀 갈등을 겪음 -> 갈등을 해결하고 나서 꿈을 이룸     


  이 도식 속에 현재 나의 모습을 대입해 본다면?     


     

-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현실에 놓여 있는 0의 상태인 나

     

  나는 내 꿈마저 발견하지 못한 0의 상태에 놓여 있다. 즉, 이 도식 속에서 나는 꿈을 발견하지조차 못한 채, 아버지가 시킨 권투만을 무의미하게 반복했던 빌리 엘리어트의 상태와 동일하다. 이후,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리노라는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또 이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갈등을 겪으면서도 결국 꿈을 이뤄낸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운명적인 꿈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를테면, 문학 같은 것들 또한 더 이상 내 심장 박동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다시, 0으로 환원되었다. 도저히 멈추지 않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겪는 나에게 꿈이 싹트기에 현실은 너무나도 척박한 곳이다. 어떤 양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메마른 사막 같은 왼 가슴팍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낱장의 하루를 넘겨나갈 뿐이다. 그 어떤 빛깔도 가지지 못했다. 오로지 무채색으로 분분한 흑백 세계 속에서 잿빛의 마음을 지닌 채 놓여 있을 뿐이다.  

  문학과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이 나의 아름다운 꿈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재능의 한계에 부딪히고,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가 당위로 떠오르는 지금, 나는 그 꿈을 품고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하루하루 지탱해 나가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 속에 놓여 있다 보니 꿈을 떠올릴 만한 어떠한 거름 같은 것조차 얻을 수 없었다. 시 또한 시냇물처럼 쓰고 싶은 언어와 사유들이 흘러가야만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물이 완전히 말라 버린 가뭄의 냇가. 혹은 딱딱하게 굳어 버린 기계나 강철. 더 이상 쓰고 싶은 것도 없고,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나마 품어 왔던 꿈들, 그리고 파편적으로 분분히 흩어진 꿈을 경유하다가 지금 이곳, 적막한 현실에 당도했다. 내 손아귀에는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꿈의 파편들. 가끔씩 손을 움켜쥘 때마다 따끔하게 찔러 오는, 꿈에 부풀었던 나의 모습들. 이것들을 그러모은 채, 이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는 아버지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복싱을 하다가 우연히 ‘발레’라는 꿈을 맞닥뜨렸다. 그 이후부터 빌리 엘리어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발레리노’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전진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꿈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반대와 같은 갈등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며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어쩌면 상투적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르는, 완벽한 꿈의 서사를 지닌 빌리 엘리어트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본다. 내 꿈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더 이상 나의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나. 그 꿈이 사실은 남의 꿈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는 지독히도 비참한 현실과 직면하게 된 나.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나. 0으로 수렴된 나. 이 텅 빈 현실 속에서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을까?     

 

  이제 다시 원점. 다시, 0으로부터 시작할 차례다.

  완전한 꿈을 향해.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온전한 한 사람으로 도약하기 위해.



by.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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