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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Apr 13. 2023

지금 여기

3月,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을 읽고

  특정 시기에 만났기 때문에 더욱 더 와닿는 문장들이 있다. 나의 3월을 시작하게 만든 문장은 ‘지금 여기’였다. 우연히 읽게 된 최진영의 책 속에서, 새롭게 알게 된 이와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영화 속 대사에서 만난 ‘지금 여기’를 지칭하는 문장들. 휴학이라는 새로운 변환점을 맞이한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시작을 앞두고 불안할 때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나만의 집을 갖게 되었다. 


  “아주 많은 것을 잊으며 살아가는 중에도 고집스럽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왜 남아 있는지 나조차 알 수 없는 기억들.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 속 ‘나’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주한 집은 열일곱 집이다. 거주한 적은 없으나 기억하는 집까지 합치면 스무 집. 각기 다른 거주지의 유사한 형태의 집에서 살아가며 자주 이사했다. 수많은 집을 거치며 자란 ‘나’가 기억하는 최초의 집은 우물이 있는 집. 흙마당에 검은 기와가 얹혀있는 집. 비가 그친 날이면 툇마루에 청개구리가 나타나던 집이다.  


  “완치하리라는 희망보다 훨씬 단단한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이제 우리가 찾아낼 거야.”


  재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나’를 살게 만드는 건 위로도, 약도, 치료도 아닌 ‘집’이었다. 어진과 대화를 나누던 ‘나’는 살아본 적은 없으나 기억하는 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기역 자 형태의 단층 주택, 초록색과 빨간색이 가득한 텃밭, 그러자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와 희망을 느끼게 된다. 이후, 그 집을 찾아내 벽과 지붕을 고치고, 풀을 베는 법을 배우고, 야광별 스티커가 붙어 있는 유리창을 유지하며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내 삶과 내 죽음을 위해, 병원 침대가 아닌 나의 집에서 살아간다.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 한 송이.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겠지만.” 


  발산하는 시간이 응축된 ‘나’의 스위트 홈의 핵심은 기억이다.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와, 겪지 않았어도 기억하는 과거가 합쳐진 지금 여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자 언제든 두고 떠날 수 있는 천국이다. ‘나’만이 바라볼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삶은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여기’ 있는 천국은 누구나 겪는 탄생과 죽음 앞에서 저마다의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번에도 소설을 통해 사랑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쓰는 사람으로 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입니다. 죽어 가면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남기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이란 문장을 쓴 뒤 나는 죽음보다 힘이 센 희망을 느꼈다. 오늘의 사랑, 오늘의 당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최진영의 소설 「홈 스위트 홈」은 수상소감과 문학적 자서전 속 문장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삶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툇마루의 청개구리처럼 그녀만이 기억하는 고집스런 순간들과 그토록 꿈꾸던 내일이라는 조각이 나타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작은 순간이 누군가를 다시금 살아가게 만든다. 이것이 소설을 통해 그녀가 전하고 싶었던 사랑일 것이다. 오늘의 사랑, 오늘의 당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고. 그리고 나 역시, 새롭게 만나게 될 친구들에게 이 소설 속 문장들을 선물하고 싶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3월에 읽었으면 하는, 언제든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만들 문장들을. 


  휴학을 한 뒤 같은 목표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3월 3일, 우리가 꿈꾸는 목표를 이룬 이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평소의 고민들을 담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 집착과 불안에서 멀어지는 법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지금 여기만 생각하라’는 답을 듣게 되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지금 여기 하나만 있으니, 눈앞에 없는 걸 가져와서 걱정하지 말라고. 생각을 내려놓고 감각에 집중해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는 답변. 명쾌한 해답이 아닐 수 있겠지만, 나에겐 큰 울림을 주는 답이었다. 


  얼마 전 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역시, ‘지금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양한 세계 속에서 누구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자 ‘에블린’은 무한한 다중 우주를 겪으며, 쿵푸 선수가 된 모습, 가수가 된 모습, 스타 배우가 된 모습 등 다양한 다른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다중 우주 속 지금 자신이 가장 최악의 선택을 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다중우주를 통해 모든 것을 보고, 모든 장소를 거친 뒤, 그럼에도 에블린은 ‘지금 여기’를 택한다. 언제까지나 가족 곁에 있을 것이라고. 그 한 줌의 시간을 소중히 하겠다고. 내가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그것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일으키더라도,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하는 현실의 우주가 가장 소중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여기’라는 말은 내가 쌓아온 조각들을 불완전하다고 여기며 고민했던 시간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선택을 미룬 경험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젠 그 불안정한 일들을 미리 마주하려고 하기보단 매순간 지금 여기서 살아갈 것이다. 과거의 순간에 얽매이게 되거나, 미래의 날들을 두려울 때면 ‘지금 여기’를 떠올려 보려고 한다. 언제든 두고 갈 수 있는 천국을 쌓아가며. 나의 오늘을 사랑할 것이다. 



by.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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