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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Apr 13. 2023

손잡아 오는 천국

3月, 유지혜의 『쉬운 천국』을 읽고


  이번에 유지혜의 ‘쉬운 천국’을 고르긴 했지만, 평소 에세이를 잘 읽는 편은 아니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마음을 온전히 토해내는 공간에 자주 발을 들이기에는 나는 너무 홀로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읽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야 한다. 그게 내 나름의 독서 원칙이었다. 다만 어떤 색채 짙은 선택은 의도치 않게 벌어지곤 한다. 제시된 세 가지 선택지 중 <끝과 시작>은 책을 아빠의 집에 두고 왔고 <홈 스위트 홈>은 도서관에 없다. 마침 전자책으로 바로 빌려 볼 수 있는 것이 <쉬운 천국>이었을 뿐이다. 최근 고전 희곡과 소설만 골라 먹어서 허구성이 조금 옅은 장르를 읽어보자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쳤다.

  아무 정보도 없이, 호기심 없이 타인의 내밀한 마음의 문을 열어보는 것. 어쩌면 가장 그 사람을 쉽게 사랑하는 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열어보면 그 사람을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도 그리 냉담하게 굴지 못했다. 지금 이 글도 다른 일을 제쳐 두고 먼저 써내려가는 중이다. 책이 여행 에세이 카테고리에 있지만 결국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있어서 더 그랬다. 낯선 곳에서 익숙하게 살기. 나 자신을 쓰기. 분명 여행을 하고 있는데 배경은 포커스가 나간 사진마냥 흐릿하다. 그 흐릿한 원경 앞에 놓인 어떤 젊음. 글 속에 있는 사람이 너무 가깝게 다가왔고, 나는 그의 무수하고 허물없는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응원하며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유지혜라는 사람은 나와 어떤 면에서 너무 정반대라서 신기할 정도였다. 여행지에 가서도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과 일상 속에서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라는 사람. 작은 것에도 크게 기뻐하고 언제든 인연에 열려 있는 사람과 도취되고 싶어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나. 그런데 점점 읽어갈수록 성향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자아가 단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는 것을 꿈으로 삼겠다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완벽하고 싶어서 첫 발자국조차 우물거리고 있는 나와 달리 어디서든 펜을 놓지 않는 작가의 모습이 부러웠다. 꿈과 낭만을 환상으로 부유하게 두지 않고, 현실에서 나의 진창이 조금 묻어 빛이 바래더라도 도전하는 그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라는 존재의 세계에 대해서 자주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것, 완벽한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는 사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불만족스럽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취약한 나의 세계와 달리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단단함. 겨울을 코트 한 벌로 나고 가난해도 티켓을 끊어 떠나버리는 과감함. 이 사람은 그걸 어떻게 가졌을까?

답은 공동체 속에 있었다. 

  한때 나는 홀로 완전해지리라 다짐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걸 바라고 있다. 독립된 나만의 영역을 선포하고 왕국을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작고 너무 쉽게 무너진다. 서로를 간섭하지 않으려면 그만큼 원이 작아야 하기 때문이다. 홀로 한번에 쌓은 성벽은 엉성하기 마련이고. 자아를 튼튼하게 구성하려면 아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많은 공간을 돌아보고 많은 실패를 겪어야 한다. 혼자 내것을 반복한다고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지혜라는 사람이 그랬듯이.

  어쩌면 문학의 관심을 연극으로 확장한 것도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서사 예술이고, 근대 문학의 원형은 희곡에서 찾을 수 있어도 있겠지만, 홀로 걷는 글쓰기와 달리 함께 뛰어가는 모습은 동경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다. 물론 운신이나 창작에 조금 더 제한이 생길 수도 있지만, 어떤 틀은 눈 앞에 나타났을 때 비로소 넘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by. P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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