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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Apr 13. 2023

필연의 시작은 우연

3月,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을 읽고

  최근 넷플릭스 화제작, ‘더글로리’, 극중 학교폭력 가해자인 연진은 동은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 이거 다 우연 아니구나?’ 그러자 동은이 대답하길 ‘여기까지 오는데 우연은 단 한 줄도 없었어.’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우연이란 운명으로 포장되는 필연의 일부일 뿐이다. 어리석은 인간은 이전에 손등이 스친 그를 다시 마주할 때, 비로소 운명을 믿고야 만다. 그러나 그 상대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상대였다. 우연이 겹쳐 운명이 된 것이 아닌 운명을 납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우연적인 순간이라는 것이다. 선후구조가 바뀌었다.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작품 ‘첫눈에 반한 사랑’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예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에 스쳐 지날 수도 있었던 그때 그 거리나, 계단, 복도는 어쩌란 말인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으냐고- (중략) 그러나 난 이미 그들의 대답을 알고 있다. 아니오. 기억나지 않아요.’ 작가에 따르면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우연이란 그저 우연에 그치고야 만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떠오르지 않는 정도. 스스로가 누군가의 운명의 상대가 될 만큼 준비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운명은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준비하지 않은 자가 되어보자. 운명과 필연 그리고 우연까지. 세 뭉텅이 속 얽힌 소용돌이에 그저 자신의 몸을 맡겨보자. 필연의 주인공을 미리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단지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자.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장소에 손을 댈 때는 오롯이 그의 온기를 느끼자. 정체 모를 이가 눌렀을 엘리베이터 버튼, 회전문 손잡이, 심지어는 배달 용기까지. 세상이 순리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레 흘러가듯, 우리 역시 그저 흘러가자. 운명의 상대의 정체를 추리하는 헛된 상념은 버려두자. 어리석은 인간은 운명과 우연의 경계를 파악할 수 없다.


  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지나쳤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혹은 버스를 함께 기다렸던, 혹은 스페인어 수업을 함께 들었던 학우, 언젠가 한 번쯤 내 인연을 만났을 것이다. 상대가 인간이든, 사물이든. 그러나 난 실감하지 못했다. 운명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생토록 그 준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니 상대 역시 준비를 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그런대로 살아가겠지. 자유로이 세상을 떠돌다 그에게 정착하겠지. 모든 우연을 꿰뚫어 자신의 필연을 정립해나가는 이보다 ‘어? 그때!’하며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모습이 더욱 자연스럽지 않은가. 세상은 필연의 법칙으로 움직이니 때가 되면 내 인연을 만나겠지. 그날을 기약하며 인상 깊은 구절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장일 뿐. 사건이 기록된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 있다.’



by.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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